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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May 09. 2020

핑계의 기획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단지 믿어주는 척이라도 해줄 수 있게 짜임새가 있냐, 부끄러움은 오로지 들어주는 사람 몫일 정도로 얄팍하냐의 차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다 해보자. 여기에도 등급이 있어 만약 본인이 마블링 완벽한,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할 정도의 ‘1+++’ 소고기 같은 ‘짝사랑 스페셜리스트’일지라도 거기서 멈추고 싶어 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과수원에 열린 포도를 쳐다보며 군침 다시던 여우의 마음도 딱 그랬지 않던가? 결실을 맺고 상대방도 이쪽을 바라봐주길 바란다. 당신의 눈부신 미소를 보고 싶지만 그게 안되니 결국 핑계를 찾고 말지.    


  짝사랑 유경험자라면 다들 알 거다. 상대를 향한 일방통행이 길어질수록 고백 타이밍 잡기는 내리쬐는 햇살을 손으로 잡는 일처럼 불가능에 가까워진단 사실을 말이다. 결국 알아서 그만두거나, 불나방처럼 거센 불길에 뛰어들어 불타 죽어야 한다. 혹은 핑계를 찾아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어야 하지. 혹시라도 본인 짝사랑을 핑계 따위로 폄하하지 말라 화내실 분들께서 있으신가? 그렇다면 이번 글에서만큼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 되어 ‘당신이 굳이 가시밭길을 자처하기 위해 내세울 핑계 기획안’ 몇 가지를 꼽아보겠다.

 

1. 옆에서 어슬렁거리다 보면 언젠가 알아줄 거다. 괜히 부담 주고 싶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얼마나 정이 흘러 넘치는 문장인가? 달콤하다. 로맨틱하지.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은근히 향기를 풍기고 스스로 빛내다 보면 언젠가 돌아봐줄 거라 믿는다. 이 거센 풍랑과 같은 마음을 당신이 모를 리 없으니까. 근데 이걸 알아야 한다. 그와 그녀는 부모님이 아니다. 돌아봐줄 의무도 이유도 없다. 아니라고? 결국 마음이 닿았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본인만 눈치 없이 짝사랑이었다 착각하고 있던 건 아닐까? 혹은, 정말 들키지 않고 또 부담 주지 않았는가? 정말?


2. 날 좋아할 리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범국민적 핑계다. 근데 사실 어쩔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온갖 분쟁이 왜 생기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듯 좋아해 주지 않는데도 이유가 없다. 어찌할 바 모르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두 눈 멀쩡히 뜨고도 코 베이는 경우와 같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마른 짚을 등에 짊어진 채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리 만무하니까. 다만,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며 자신을 속이진 말자는 얘기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니까.


3.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은 때가 아니다. 후일을 기약한다.사랑하기에 딱 좋은 때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옆에서 보고 듣기에 안쓰러울 순 있겠으나 정말 그 이유 때문이라면, 짝사랑의 크기가 그 정도에 불과했거나 그 사랑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단 거다. 그리고 지금이 때가 아니라면 언제가 그 시기란 말인가? 모르겠다. 그냥 당신은 이쪽처럼 타이밍만 재다 실패하지 않길 응원할 뿐이다. 윤리적인 이유 등등이라면 많이 아파하지 않다 접길 바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란 노래 구절도 있지 않은가?


방향과 속도는 기획하는 사람 입맛대로.


   사실 본인이 ‘짝사랑 전문가’라 예시를 이쪽으로 들었을 뿐, 살아가면서 생기는 온갖 핑계의 이유 역시 짝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있어 주저하고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온갖 변명 거리를 생각하고 판을 짜기 시작한다. 핑곗거리를 기획하는 거다. 손톱 밑 가시처럼 까슬까슬하고 마뜩잖은 불편함으로부터 눈 돌리기 위한 온갖 소재들 말이다. 남들 보기엔 그럴싸해 보일 순 있으나,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인만큼은 절대로 속일 수 없지. 덮어놓고 외면할 수는 있겠으나 옮겨 붙은 산불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금 타고 있는 곳까지만 불타게 수풀을 정리하거나 초장에 최선을 다해 진압할지 택해야 한다. 산 전체를 태워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이게 말처럼 쉽질 않아 우리 모두는 같은 실수를 평생토록 저지른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첫걸음은 위대하다. 잘되고 되지 않고는 이후 문제다. 도전해야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어야 성공과 실패도 있다. 앞에 놓인 문제가 일단락되어야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할 수 있고 말이다. 본인 발자취에 물음표를 찍을 수는 있지만, 아직 떼지도 않은 걸음에 무수한 느낌표와 물음표를 갖다 대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측하고 예상한다 하여 바뀌는 일은 없으니까. 핑계 없는 무덤은 없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관짝 속에 박제되는 일은 없게 하자. 그게 바로 지금, 멈춰있지 말고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다.


가려는 길이 비록 어둡고 물음표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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