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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Mar 15. 2020

달라진 주말 오후의 기록.

코로나로 바뀐 일상에 대하여.

   요 한두 달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코로나 19’란 전염성 높은 질환으로 인해 생활 전반이 미묘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변화는 마스크가 일상이 된 거다. 미세먼지 때만 해도 외출 시 겨우 챙기던 마스크였는데, 이제는 볼이 쓰라릴 정도로 한 몸이 되었다. 살면서 맛집도 아닌 마스크 때문에 줄을 서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어디 그뿐만인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타인의 기침 소리에도 예민해진 삶을 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조심하는 태도는 더 이상 호들갑이 아니라 배려가 된 거지. 당장 나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며 반강제적인 ‘집돌이’ 생활에 돌입했다. 원래부터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큰 불편함은 없긴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평소와 달라진 생활양식을 만나곤 한다.  


요즘처럼 길가에 사람이 없는 적이 있었을까 싶다.


   혼자 나와 산 지 벌써 칠팔 년이 되어간다. 이 생활이 익숙해진 뒤론 대부분 비슷한 일상이다. 자타공인 커피 마니아라 하루의 시작은 집에서 내려마시는 커피로 시작한다. 평일에는 출근이 팍팍해 회사로 향하기 바쁘지만, 여유가 있다거나 주말인 경우 무조건 원두부터 갈아낸다. 가득 해지는 커피 향으로 졸린 눈을 비비지.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다 눈이 떠지면 즉흥적으로 할 일을 정한다. 가고 싶던 카페나 맛집을 찾아보고 때때로 친구를 만난다. 가끔씩은 밀린 일을 처리하기도 하고. 혹은 영화나 드라마, 책과 술로 느지막한 주말 저녁을 즐긴다. 배달 주문으로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품에 끼고 산다. 편한 자세로 좋아하는 예능을 틀어놓은 뒤, 야식 한 입에 술 한 모금하면 세상 뭐 있나. 이게 행복이지. 


   코로나가 사회적 문제가 된 이후에도 위의 패턴 자체가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커피를 내려마시고 무언가 보는 일을 즐긴다. 다만 맛집이나 배달 주문을 자제하고, 의식적으로 직접 해 먹는 빈도를 늘렸다. 나름 파스타나 스테이크는 일가견 있다 자부하는 터라 ‘반강제 집돌이 생활’ 초반엔 자주 해 먹었다. 근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무리 느끼한 걸 좋아하는 입맛이래도 몇 주 동안 주야장천 해 먹자니 한식이 간절해졌다. 결국 평소에는 손대지 않던 한식에 도전하고 있다. 한식은 상대적으로 필요한 재료도 많고 맛을 살리기도 까다로워 굳이 해 먹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식 중 내세울 무기는 갈비찜뿐이었는데, 이젠 된장찌개까진 꽤 그럴싸해졌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던 터니 이 참에 한식 마스터가 돼볼까 싶기도 하다. 


드문 인적.


   사실 일상에서 가장 타격 입은 건 운동 쪽이다. 퇴근 후 짧고 굵게 운동하며 건강을 챙겼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체육관은 좀 꺼려진다. 체육관에는 좀 미안하다만 당분간 쉬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이건 내가 남들에게 옮길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땀이 원체 많은 편이라 평소에도 질질 흘리고 다니는데, 혹시라도 아프게 되면 잠복기 동안 체육관에 많은 영향을 끼칠까 싶어 말이다. 대신 너무 집에만 있자니 좀이 쑤셔 이번 주말부터는 등산을 시작했다. 살면서 스스로 등산 다닐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상쾌하고 운동도 되겠다 싶어 조금은 친해질 생각이다. 콧구멍에 맑은 공기 좀 쐬어주는 일도 나쁘지 않고. 이번 주까지 하면 청계산은 한 번 훑어보겠다 싶어 다음 목표를 물색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겸연쩍어진 점도 있다. 평생 없던 효자 노릇을 하고 산다. 정확히 말하자면, 간신히 효자인 척하고 있다. 평소에는 살가운 자식도 아니고, 전화 통화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부모님께 안부 전화드리는 일은 손에 꼽았다. 그래도 요새 같은 때까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순 없지 않은가? 가능하면 매일, 잠깐씩이라도 전화드리고 있다. 마스크는 구하셨는지, 줄은 오래 안 서셨는지, 건강은 괜찮으신지 등등. 마음 쓰이는 부분을 물어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한다. 혼자가 너무 편하고 할 일도 너무 많은 타입이라 나 홀로 생활이 외로웠던 적은 딱히 없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가족과 조금은 가까워진 생활도 나쁘지 않다.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게. 막 혼자만은 아니지. 가족의 따스함을 전화기 너머로 느끼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몇 달 새 많은 일들이 바뀌었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또 그 흐름에 맞추어 가기도 하고, 나름 적응해가고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한다. 새로움에 눈뜬다. 두어 달 뒤 황금연휴를 노리고 사둔 비행기 티켓과 보름짜리 휴가는 눈물을 머금고 취소해야겠지만,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겠지. 코로나 때문에 마냥 멈춰 서있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평소와 조금은 달라진 채 행동하고 타인을 바라본다.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겪고 있으니, 내 편의를 조금 내어놓더라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말이다. 더 큰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 정도야 일도 아니지. 조금만 더 서로 힘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상쾌한 호흡을 만끽하며 집 밖을 나설 수 있을 테니. 약간의 양보는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을 작정이다. 


곧 다시 파란불이 들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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