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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9. 2020

인도 100문 100답

혼종과 방종의 나라

'인종 우월주의는 유럽의 인종은 아리야인과 셈족으로 나뉘는데 노아의 후손이며 백인종이고 더 우월한 인종인 아리야인의 순수 혈통이 훼손되고 있다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급기야 막스 뮐러는 유럽으로 건너간 북방 아리야인은 활동적이고 전투적인 데 반해, 이란을 거쳐 인도로 들어간 남방 아리야인은 소극적이고 명상적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는 자연스럽게 오리엔탈리즘으로 연결되고, 결국 인도는 유럽의 아리야인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소위 ‘백인의 짐’이 되었다. 잃어버린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광수 


이천십이 년 나는 인도를 두 달 동안 여행했다. 인도라는 나라가 여전히 무지의 풍경이었던 스무 살의 여름, 인도는 환상과 몽환이 혼재하는 명상의 나라였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찾아서 떠나는 고행자의 나라, 카레와 각종 향신료의 고향, 큼지막한 두 눈을 가진 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나라. 인도는 환상의 나라였고, 류시화가 말했듯 영혼 호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종착지였다. 나는 델리와 바라나시, 아그라와 첸나이 그리고 퐁디셰리를 여행하며 몽환의 나라를 떠돌았다. 


이천십구 년 나는 인도에서 다섯 달 동안 공부를 했다. 인도의 역사를 얼추 알았던 서른의 무렵,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견뎌내며 무지막지한 공해로 가득 찬 델리를 살았다. 인도는 삶과 가난이 혼재하는 실존의 나라였다. 가장 일상적인 삶의 풍경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곳, 버텨내는 삶 자체가 고행인, 여전히 카스트적 풍경에 의지한 채 서로를 적대하며 차별하는 나라, 십삼억의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문화와 인종과 사람과 신과 카레와 향신료와 길거리를 떠도는 소와 개와 동물들과 거지와 부자와 고급 외제 차와 낡은 릭샤와 오물과 신전이 활보하는 나라. 인도는 삶이 실재하는 나라였고, 류시화가 말했던 영혼 호수는 서구 관광객이나 일부 동양인들이 돈을 주고 엿보고 오는 관광의 종착지였다. 나는 델리와 바라나시, 아그라와 푸시카르, 리시케시와 자이푸르를 공부하며 일상과 차별과 투쟁과 갈등 속을 떠돌았다. 


'인도에는 중국의 천자天子 같은 정치적으로 통일 국가의 구심점이 될 만한 개념이 없다. 중국의 ‘천하 평정’과 같은 개념이 인도 고대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 자체를 유한한 것으로 생각하는 힌두 세계관에 따라 정치권력이 모든 가치의 정점에 서지 못했다. 그래서 각 지역의 모든 권력을 하나로 통일시켜 거대한 제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욕망 자체가 중국에 비해 약했다. 중국처럼 통일된 문자와 언어가 존재하고, 한족 중심이지만 하나의 민족 개념이 있지도 않았다. 언어나 종족 다양성 면에서 인도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광수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라는 책을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다. 사실 수만 가지의 커리는 있다, 라고 우스개처럼 말하던 저자는 인도의 다양성과 혼종성을 주목한다. 사회학자 호미 바바가 언급했듯 인도는 혼종의 나라다. 영국 식민지배 이후 영국의 지배자들을 따라 하며 근대성을 꿈꾸던 인도인들은 이미 세분되어 통합할 수 없는 힌두 세계관에 서구의 근대성을 덧입혔다. 그 혼종이야말로 인도를 설명할 수 있는 길. 이광수의 100문 100답은 그런 인도를 적어도 한 뼘은 더 알게 해주는 책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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