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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6. 2020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14, 지극히 주관적인 현대의 기록

한국 땅을 처음 떠난 게 이천팔 년, 오랫동안 한국을 등진 건 이천십사 년의 일이다. 콜롬비아에서 일 년을 머물며 지구의 반대편의 풍경을 두 눈에 담았던 그 당시, 내게 한국의 익숙한 풍경들은 꽤 낯설게 다가왔다. 콜롬비아에서는 타인의 삶을 가늠할 수 없었다. 베네수엘라의 이민자, 미국인 학생, 프랑스인 요가 선생, 길에서 마주하는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그것을 추측하는 건 사실 무례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모두의 삶이 보였다. 대학을 나와 구직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공무원에 합격해 세종시의 국가직 공무원을 하는 사람들, 오랜 회사 생활을 마치고 노후를 대비하려 튀김 닭을 파는 사람들. 한국의 삶은 예측 가능했고, 그 가능성은 우리가 현대사의 역사를 온전히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일률적인 삶은 한 번도 매력적으로 보였던 적이 없다. 마치 한국의 키치적인 번화가의 야경처럼, 나는 그 삶의 풍경이 못내 싫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삶,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 그러한 삶과 풍경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건, 콜롬비아와 체코, 독일과 아르헨티나 그리고 인도를 거쳐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고 나서야였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어딘지 모르게 생경했지만 동시에 친숙했다. 예전 같았으면 피했을 후줄근한 골목의 풍경에선 아버지 세대의 역사가 보였고, 똑같이 생긴 공무원의 무리에선 그들이 치열하게 지나쳐왔을 젊음이 보였다. 한국은 사실, 동질적이지만, 그 동질적인 외면 아래 가장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회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가 다르듯, 한국의 역사는, 그 역사가 자리 잡은 풍경은 사실 그 어떤 풍경 보다 다채로웠다. 


공부를 시작하고 세계사를 탐독하면서 한국사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기존의 시선이 한국을 중심에 둔 세계사였다면, 석사를 마칠 즈음엔 세계사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작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한국을 바라볼수록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삼국시대와 통일 신라, 고려와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역사는 세계의 질서에서 미미했다. 동시에 한국의 현대사는 사실 제국들의 독무대였던 20세기의 풍경에서 그 영향력에 휘둘리는 존재였을 뿐이다. 다만, 그 역사의 발자취에서 나는 꿋꿋이 이야기를 써 내려간 사람들을 보았다. 여전히, 끊임없이, 민중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 현대사를 새로이 배웠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 그렉 브라진스키의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을 읽으며 다른 시선에서 쓰여진 한국사를 읽었고,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에서 국제 문제에서의 한반도 (Korean Peninsula in International Affairs) 수업을 들으며 미국과 인도, 유럽에서 쓰여진 한국에 관한 다양한 텍스트를 읽었다. 그렇게 읽고 배운 한국 현대사는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그것이 나의 한국 현대사였다. 유시민에게 또한 나의 한국 현대사가 있을 터였다. 그가 직접 통과해온 한국의 현대는, 그가 써 내려가는 담백한 문체에 녹아 새로운 한국의 역사를 그려낸다. 지극히 주관적인 현대사이고, 그의 정치적 스탠스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현대의 풍경들을 그의 경험에 녹여내는 글들은, 또 다른 시선으로 한국의 역사를 보게 해 주는 창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문화적·인종적으로 매우 균질하며 중앙집권 정치체제에 익숙한 민족이다. 상이한 인종과 종교, 크게 다른 문화와 전통이 뿌리내린 나라는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어렵다. 이슬람권과 달리 종교와 세속권력이 결합해 변화와 혁신을 봉쇄하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일제침략기에 국채보상운동을 벌였고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을 한 민족이다. 공동의 사회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의지를 묶어내는 집단적 능력은 경제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회적 자원이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의 변화는 기적이 아니다. 일어날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일 뿐이다.' 유시민 그의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한국 현대사'를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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