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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Nov 26. 202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었던 프라하의 봄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쥘리에트 비노슈가 분했던 테레사와 레나 올린이 분했던 사비나는 내게 프라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캐릭터들이었다. 프라하에 있는 삼 년 동안 내가 마주했던 건 또 다른 토마시, 프란츠, 사비나, 테레사들이었다. 나는 오랜 기간의 연애를 끝내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주체할 수 없어 프라하로 향했다. 프라하는 헌신했던 관계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털어냄이자, 다시금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여정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벼움에 날아올랐고, 종종 그 낯선 감각에 무거움을 갈망하기도 했다. 그게 내가 봄을 건너뛰고 여름을 찾은 이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은 밀란 쿤데라의 역작으로 생의 한순간에 마주하는 농담과 같은 존재들에 관하여, 그 존재가 이루어내는 관계의 가벼움을 온전히 그려낸다. 소련에 짓밟힌 봄의 풍경에서 작가는 네 존재의 삶과 죽음, 사랑과 우정, 애정과 결핍 사이에서 역사에 실존하는 생의 풍경을 그려낸다. 삶은 일차원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방탕과 집착, 가벼움과 무거움의 교차 속에서야만이 집합적 삶을, 그 집합 안 개개인의 삶을 포착해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책을 만난 것은 스무 살 무렵 홍대의 한 카페였다. 처음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프라하 비노흐라디의 눅눅했던 천장 높은 방에서였다. 책은 프라하에서 내가 어딜 가든 나를 따라다녔고, 때론 와인과 때론 맥주와 벗이 되어 나에게 사비나 혹은 테레사를 갈망하게끔 했다. 어느 한순간에 나는 토마시였다가, 프란츠였고, 또 다른 순간의 나는 사비나이거나 테레사였다. 나는 가벼운 관계들 속에서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존재였다. 여름은 지나갔고, 나는 가볍디가벼운 여름을, 햇살이 블타바강에 반짝이면 와인을 홀짝이며 리에그로비 언덕으로 오르곤 했던, 참을 수 없이 낯설었던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심리적, 생리적 구조란 너무도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삶의 어느 시기에 있어서 젊은이는 그것을 통제하는 데에만 거의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때가 있고, 그래서 그런 젊은이에게 사랑의 대상 자체, 즉 사랑하는 여인은 증발해 버리고 만다 (어린 바이올린 연주자가 자신이 연주하는 동안 손을 움직이는 기법 같은 것은 더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 기법을 숙달하기에 이르지 않는 한 작품의 내용에 집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케타를 생각할 때 내가 중학생 아이처럼 마음이 설레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 감정은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유래했다기보다 내가 서투르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그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러 마르케타 자체보다도 훨씬 더 내 감각과 생각들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밀란 쿤데라 


기실 밀란 쿤데라의 글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고, 프라하의 봄이라는 이름의 영화로도 대중에게 익숙한 게 이 작품이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따로 있다. 바로, '농담', 한 편의 삶을 농담으로 치환해내는 그의 작품은 진정으로 봄과 여름 사이를 살았던 내게 삶이, 존재들이, 사랑이, 관계가 하나의 농담과 다름이 없음을 알려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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