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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Feb 14. 2021

백년의 고독

환상과 실재가 혼재하는 고독

콜롬비아는 내게 환상과 실재가 혼재하는 고독의 땅이었다. 처음 남미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감정은, 왕가위 감독이 해피 투게더에서 그렸듯, 반대로 뒤집힌 지구를 걷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구라는 동그란 구에 올라타 나의 삶과 백팔십도 다른 곳에서 일상을 살고, 사랑을 하며,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콜롬비아는 도시와 자연, 빈과 부, 건기의 태양과 우기의 장마가 강렬한 콘트라스트로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삶은 죽음 위에 서 있었고, 햇볕은 그림자 안에서만 온전할 수 있었다. 


오랜 식민의 역사 끝에 스스로의 삶을 찾은 이들은 나라의 이름을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 후에는 콜롬비아 공화국(República de Colombia)이라고 칭했다. 남아메리카에 단일 국가의 기치를 내세웠던 시몬 볼리바르의 꿈은 원대했지만, 그 꿈은 결국 식민지배자의 또 다른 환상에 불과했을 따름이다. 원주민은 식민지배자(Conquistadores)에 동화되지 않았고, 백과 흑, 지배와 피지배의 간극은 수백 년이 흘러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콜롬비아의 현재에까지 이어졌다. 콜롬비아는 열정과 춤, 미녀의 나라라 불리었지만, 그것은 서구 세계에 소비되는 이미지일 뿐, 치닫는 빈부격차에 신음하는 원주민과 혼종의 피, 혼혈(Mestizo)의 삶은 지난하기 그지없었다. 


그 혼재와 혼종의 땅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환상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독이 그녀에게 추억을 걸러주고, 살아가면서 그녀의 가슴에 쌓였던 추억의 쓰레기들 가운데 둔감해진 부분을 불살라주고, 나머지 추억, 즉 가장 고통스러운 추억을 순화시켜 주고, 확대시켜 주고, 영원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어체를 구어체처럼 사용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에게 고독이란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영원한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매개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태어나 글을 쓴 마콘도에 들러 백 년의 고독을 읽으며 그가 그려냈던 마술적 사실주의를 음미했다. 오늘 밤은 그의 온전한 사실주의에 취해 잠들고 싶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시의 연금술에 의해 이상화되어진 소녀가 진정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내려고 했을 때 그는 그 당시의 비통에 가득 찬 황혼과 그녀를 따로 구별해서 생각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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