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나쁜 페미니스트들에게
로라 멀비(Laura Mulvey)는 남성적 시선(Male Gaze)에 관해서 설명하며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시선'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여성 배우는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 배우의 시선, 그 시선 뒤의 카메라, 그리고 카메라 너머 독자의 또 다른 시선을 감당해야만 한다. 결국 여성은 남성이 바라봄 직한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것에 맞춰간다는 것이 남성적 시선의 정의이다.
페미니스트 이론에서 남성적 시선은 여성과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을 규정한다. 시각 예술과 문학에서 남성 중심의 '이성애'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재현시키고, 여성은 남성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써 사용된다. 이렇듯 남성적 시선은 영화와 광고, 문학과 음악, 미술과 조각 등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삶 저변에 존재한다. 오늘 당신이 소비한 아이돌 가수가 나오는 광고 한 편, 오래전 유럽의 화가가 그린 한 편의 누드화, 할리우드 영화의 카메라 무빙에 따라 묘사되는 여배우의 매력은 모두 남성적 시선의 소산물일 뿐이다.
벨 훅스(Bell Hooks)는 대항적 시선(Oppositional Gaze)으로 로라 멀비의 남성적 시선을 비판한다. 그녀는 멀비의 개념이 오직 백인의 매력적인 여성에 해당하는 지점을 거론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흑인 여성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영화 속 주인공에 투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영화에 재현되는 상상적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벨 훅스의 대항적 시선은 흑인의 권리에 대한 억압에 반대로 작용하는 정치적 반동이자 저항이다. 대중문화에서 흑인 - 대부분의 흑인 여성 - 은 배제되었고,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 사회적 약자, 매력적이지 않은 존재로 그려져 왔다. 벨 훅스는 대항적 시선을 통해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을 가지고 온다. 훅스는 말한다. 보는 것, 혹은 보여지는 것에는 힘이 있다.
록산 게이(Roxane Gay)의 나쁜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일련의 페미니즘적 성찰을 가볍고 쉽게 그려낸 책이다. 그녀는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이 경험하고 느꼈던 페미니즘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가 깃든 경험부터, 소소한 텔레비전 시리즈들, 그리고 험버트 험버트의 명저 '롤리타'까지, 그녀는 영화와 문학, 일상과 이상을 넘나들며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사회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자신을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며 페미니즘이 더욱 다양한 서사를 포옹해내기를 바란다.
'자기만의 페미니즘'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해내는 것, 나쁜 페미니스트들이 모이면 세상은 더욱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해질 것이다. '페미니즘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운동의 일차적 목표는 모든 분야에서의 양성평등임을 잊지 말자. 그 기고문을 읽으면서 급격히 피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어떤 여성도 그 대단한 페미니스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런 기고문들은 버틀러가 주장했듯이 여성이 되는 옳은 방법과 그른 방법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올바른 여성이 되는 방법 그리고/혹은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법의 기준은 계속 변하고 우리는 영영 도달할 수 없는 이상처럼 보인다.' 록산 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