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규 Feb 14. 202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당신이 알고도 외면했던 이야기

당신이 알고도 외면했던 이야기, 라는 소제목은 사실 이 책의 제목보다도 더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코로나 19 사태를 맞이해 세계가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된 세상에서 '세계'를 단일 국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 19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전파력은 기존 전염병과는 차원을 달리해 동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 나갔고, 이제는 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을 위협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의료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한 나라들은 전염병의 확산에 속수무책으로 자신의 국민과 영토를 내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결된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세계화다. 


하지만 세계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다. 명과 당이 번성하던 중국 중심의 세계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유럽의 부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원을 착취해 산업혁명을 이루어냈고, 이것은 '근대'로 명명되었다. 사실 근대성(modernity)만큼 폭력적인 단어가 있을까 싶다. 우리는 근-현대적인(modern) 삶을 살려고 하고 우리의 가치관을 모던한 유럽적 가치에 맞추려 한다. 이는 제국주의와 그 이후에 제국주의의 또 다른 맥락으로 출현한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과 동일하다 할 수 있다. 그 근대성의 이면에는 식민성(coloniality)이 있었다. 모든 식민지의 후손들이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식민성은,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각인시켜나갔다. 


그렇다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사실 이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간단하게 말을 한다면, 20세기 후반에 남아메리카에서 유행했던 이론인 종속 주의(Dependency theory)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대부분의 나라는 주변부로서 위치하고 그들의 노동력과 자원은 유럽의 자본과 결합해 자본주의의 생산품을 만들어낸다. 결국 그 자본주의의 체인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것은 유럽의 자본이고, 남아메리카는 원자재와 노동력을 수출하는 창구로서만 작용할 뿐이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똑같은 형태로 행해진다. 더군다나, 수많은 식민의 역사를 겪은 나라들의 자원은 여전히 제 1세계 다국적 기업의 손아귀에 놓여있다. 아프리카의 수력 자원, 중동(서아시아)의 석유, 남아메리카의 지하자원과 농업자원들은 모두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며 새로운 제국주의의 덫에 빠진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농민들은 자급자족할 능력을 갖췄음에도 서구의 소비자들을 위해 퀴노아, 아보카도, 커피를 생산하며 경작지를 자신의 생존이 아닌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맞추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서 생산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이고, 가격 결정권을 뺏긴 개발도상국의 농민들은 시장 가격의 변화에 따라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국가의 시민들은 프랑스 기업에 넘어간 (민영화된) 수자원 때문에 비싼 '물값'을 내지 못해 씻지도 못하는 사태에 처했고, 중동의 국민들은 오랫동안 석유 자원을 독점했던 제국주의의 국가들이 물러갔음에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비호를 받는 절대 왕정의 지배 아래 북한과 다름없는 독재라는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결국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인가. 나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 명제를 인정할 수 없다. 다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서 전 세계에서 행하는 해악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인류의 비극이자, 인류의 존재의 의의 자체를 의심케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위에 열거한 모든 사실보다도 가장 슬픈 건, 속칭 제 1세계의 그 누구도, 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바라보려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부는,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과 고난과 슬픔 속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 행복과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가. 


세상의 절반이 굶주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배부름은 세상의 절반에 빚을 졌다는 것을, 당신이 알았으면 좋겠다. '독일의 한 언론인이자 편집자인 야코프 아우크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서구는 이슬람인의 테러에 맞서 싸운다. 그런데 왜 우리의 테러에 대해서는 맞서 싸우지 않는 걸까? 그 테러로 죽는 희생자 수는 훨씬 많다. 5초마다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죽는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암시한다. “우리는 가장 가난한 국민에게 빚을 탕감해줄 것, 수입되는 농업 연료에 아주 높은 관세를 부여할 것, 기본 식량 등을 대상으로 주식 시장에서 벌이는 투기를 금지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장 지글러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페미니스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