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에 바치는 경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천 개 피스의 직소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천 개의 퍼즐로 이루어진 인생을 알아가기 위해선 오래된 책 속에서 지혜를 찾아야만 한다. 오만과 편견에서는 사랑을,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그 사랑의 덧없음을, 생의 한 가운데에서는 삶의 환희를, 동시에 농담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그 삶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명징하게 직조'된 우리의 복잡한 삶은 고전을 투영해야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다.
사실,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5년의 일이다. 한참 쿠바를 돌던 봄의 초입이었는데, 마침 인터넷이 안 되어서 가져간 고전을 읽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로 대변되는 러시아 문학과 유럽과 미국의 작가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헤밍웨이의 책을 집어 들었다. 그가 아바나 근교에서 머물며 소설을 썼고, 그 가운데 노인과 바다를 비롯한 역작들이 나왔던 까닭이다. 기실 노인과 바다는 그가 머물며 글을 썼다는 마을에서 읽었는데, 그 느낌이 정말 색달랐다. 마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노르웨이의 침엽수 숲을 지나며 읽었던 스무 살 무렵의 기억과 비슷할까. 그래도 그때는 비틀스의 노래라도 있었건만, 쿠바의 적대적 인터넷 환경은 그저 파도 소리를 벗 삼아 책 읽는 데 도움을 줄 뿐이었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통해 스페인 내전을 그려낸다. 1930년대 중후반에 일어난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관심 밖의 전쟁인데, 나 또한 그 존재를 기억의 늪에서 겨우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즈음의 유럽이 워낙 커다란 전쟁이 잦아서 일지도 모르겠다만, 헤밍웨이는 그만의 필체로 전쟁을 그려낸다.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은 용기를 가져올 때, 세상은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죽여야 한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한다. 세상은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때려 부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부서진 곳에서 더 강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부서지지 않으려 해도 세상은 그를 죽인다. 아주 착한 사람, 아주 점잖은 사람, 아주 용감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인다. 설사 이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언젠가 그를 죽인다.' 헤밍웨이
하지만 헤밍웨이의 글은 모두가 알다시피 '소설'이었다. 1984와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들려주는 스페인 내전 이야기 카탈로니아 찬가가 그래서 특별한 이유다. 르포르타주 작가였던 조지 오웰은 각종 선전에 함몰된 전선의 실상을 드러내고자 직접 펜을 꺼낸다. 그가 참전해 겪어내었던 전쟁의 참상은 그 어떤 미화도 전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음을 드러낸다. 책 초반부에 정의와 자신감에 넘쳐 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후반부로 갈수록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그 대열에서 이탈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웰은 담백한 시선으로 개인적 경험을 보편의 서사로 그려내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전쟁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죽어가는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뒤로 한 채 왜곡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기자들에 대한 분노, 그 전쟁과 언론을 이용해 이득을 보는 부패의 스페인과 파시스트 세력에 대한 분노, 그 모두를 이용하는 소련과 같은 거대 세력에 대한 분노가 그를 집필로 이끌었던 것이다. 전쟁을 미화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이 찬가는 조지 오웰이 보내는 가장 경의를 담은 충고가 될 것이다.
'모든 혁명적 경향을 억제하고 전쟁을 가능한 한 평범한 전쟁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존재하던 전략적 기회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우리가 아라곤 전선에서 어떻게 무장을 했는지, 혹은 무장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무기들은 고의로 보급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무정부주의자들이 너무 많은 무기를 갖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혁명적 목적에 이용될 것을 걱정한 것이다. 그 결과 아라곤에서의 대공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프랑코는 빌바오에서, 또 어쩌면 마드리드에서도 물러났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교적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이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좁혀지자 국외 노동 계급에게 대대적으로 원조를 호소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조지 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