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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규 Feb 14. 2021

총, 균, 쇠

환경결정론 너머의 인류사

총, 균, 쇠, '역사적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식량 생산의 발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유라시아와 비교해) 식량 생산이 늦어졌다. 그 까닭은 가축화, 작물화할 만한 토종 동식물이 적었고 토착적인 식량 생산에 알맞은 지역이 훨씬 좁았으며 남북 측 때문에 식량 생산과 발명품의 전파가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이 두꺼운 책을 고작 네 문단의 서평으로 설명하기엔 내 깜냥이 부족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학제를 넘나들어, 인용의 덫에 빠지다가 글을 이틀 동안 다섯 번이나 엎었다.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라는 부제의 총, 균, 쇠는 문화 인류학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역작으로 세 가지 도구로 흥망성쇠를 겪은 문명들을 분석해낸다. 왜 어떤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의 지배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왜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인들에 의해 도태되고 말았는가. 왜 각 대륙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사실 책의 제목처럼 아주 간단하다. 총(무기), 균(병균), 그리고 쇠(금속), 이 세 가지 도구를 일찍이 얻어 농업의 기반을 닦아낸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이 생겨났고, 그 집약적 발전이 여태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는 정제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환경결정론 너머의 인류사를 건넨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그는 가축화, 작물화할 만한 토종 동식물의 여부, 식량 생산에 알맞은 지역의 크기, 식량 생산과 발명품의 전파의 가능성 등을 통해 일찍이 잉여 식량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폭증하는 인구로 문명사회를 건설해낸 지역들에 관해 설명한다. 복잡한 인구 구성의 사회는 더욱 섬세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정교화된 언어는 고도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서 나타난 이 같은 차이에 따라 기술 발전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기술이 자가 촉매 작용을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1492년에 와서는 다른 지역을 엄청나게 앞서게 되었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무기류, 기술, 정치 조직 등에서 유럽인들은 그들이 정복한 비유럽인들에 비해 크나큰 이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이점만으로는 애당초 유럽의 소수 이주민이 어떻게 남북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원주민을 교체할 수 있었는지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만약 유럽이 다른 여러 대륙에 이 사악한 선물(유라시아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밀접하게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각종 병원균)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그의 환경결정론 앞에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한 유럽인들의 위대함은, 농업을 통한 인구 증가 및 문명사회 건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56종의 볏과 식물 중에서 32종을 독차지했다), 천연두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에의 면역 (유라시아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밀접하게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각종 병원균을 가지고 있었다), 막강한 군사력 (문명사회에서의 군비 경쟁을 통해 획득할 수 있었다)이라는 객관적인 이유로 치환된다. 이처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 지역의 미래는 결국 총, 균, 쇠로 이어지는 발명품 혹은 발견을 만나 더욱 확실한 현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기후가 유일한 변수는 아니지만, 특정한 집단이 야생 동물과 식물, 물 공급, 지형 등 여러 자연조건의 결합으로 유리한 환경적 기회를 잡은 덕분에 다른 이들보다 우월한 위치를 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잃었을 때 진보는 정체되며, 그런 기회로부터 장기간 수혜를 입었을 때는 강점이 지속하는 것이다. 결국 책이 함의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와 같다. 환경결정론 앞에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 특정 문명이 먼저 발전하게 된 까닭은 그저 환경적 우위를 누렸기 때문이다. 한 편의 인류사 속에서 다이아몬드는 우리에게 커다란 생각거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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