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의 시대, 건축의 대답
술의 맛이나 취한 기분, 또는 술자리의 분위기에서 나오는 만족감을 위해 우리는 술을 마신다. 이 감각적인 만족감은 매우 단기적이되 그만큼 강렬해서, 때로는 숙취나 시간 관리 실패와 같은 예상 가능한 미래의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찾고 싶은 것이 된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가장 분명하게, 장기적인 목표보다 즉각적이고 단기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술은 항상 있어 왔지만, 그것이 표상하는 가치 체계가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4년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보고서는 10여분 이내의 짧은 컨텐츠를 간편하게 소비하는, ‘스낵 컬쳐’라고 명명된 경향을 문화적 현상으로서 조명했다. 이 때만 해도 웹드라마와 카드뉴스, 그리고 버즈피드로 대표되던 ‘얕은’ 컨텐츠는 이제 더 극단적으로 짧아져서,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컨텐츠 중 상당 부분은 깊거나 복합적인 의미를 완전히 걷어낸 1분짜리 ‘유튜브 쇼츠’나 30초짜리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것들이다. 경제활동의 양상 또한 마찬가지다. 임명묵은 『K를 생각한다』에서 젊은 세대의 구호가 된 ‘욜로’와 ‘소확행’을, 장기적인 지향점을 위한 준비나 저축을 포기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본다. “성취감을 얻을 전망도 보이지 않는 경쟁에 몰두하기보다는 당장의 감각적 만족감을 누리기를 원하는 가운데, 더 과감하게 미래 가치를 대폭 할인하여 현재의 소비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면 욜로고, 그만한 대담함이 없어 최소한이나마 훗날을 생각하여 여유분을 남겨두는 소비를 하면 소확행인 것”이다. 따라서 “욜로와 소확행의 차이는 그나마 오늘을 어떻게 즐길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음주와 스낵 컬쳐, 욜로와 소확행은 장기적인 가치나 다면적인 의미보다 즉각적인 감각과 강렬하고 말초적인 경험, 그러니까 ‘임팩트’를 추구하는 사고방식의 발현이다. 사회 전반에서, 또 다양한 형태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점점 더 확산하고 수용되는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이 시대를 ‘임팩트의 시대’로 선언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새롭고 단기적인 것이 환영받는 시대에, 건축은 매우 예외적인 무언가로 보인다. 본질적으로 건축은 오래도록 남아있을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성당들은 몇 세기를 버틸 건물들로 지어졌고, 다수는 오늘날까지도 큰 변형 없이 그대로 서 있다. 굳이 ‘대성당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적어도 한 세대 너머를 내다보고 시작하는 일이다. 게다가 건축은 보통 오랜 시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경험되기에, 익숙함을 넘어선 즉각적 임팩트라는 구호와는 호환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건축은 분명 그 나름의 방식들로 시대의 요구에 반응한다. 임팩트의 시대에 건축이 응답하는 한 가지 방식은, 그러한 본질적인 제약 안에서나마 임팩트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키네틱 아키텍처는 건물의 일부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 건물 하드웨어에 적응가능성과 다양성을 부여한다. 한은주는 인천 ‘목연리’와 서울 ‘옥수연’ 등의 작업에 상황인식 기술을 통해 “건물 안으로 유입되는 그림자와 빛의 양을 조절”하는 ‘앰비언스 월’을 적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이것은 “상황의 변화를 공간에 물체화함으로써 인간의 공간적 경험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치이다. 그래서 건물을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사용자라도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건물의 안팎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앰비언스 월이 외부에서 보이는 건물의 인상뿐 아니라 내부에서 경험되는 조도와 창 밖 풍경, 그림자가 만드는 패턴까지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공간 경험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다만 하드웨어 자체에서 임팩트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러한 접근은, 하드웨어가 변화할 수 있는 폭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당장 앰비언스 월과 같은 장치도 분명 일정 정도의 새로움을 가져다 주지만, 입면과 공간의 부분적인 변화에 그치기 때문에(예를 들면 입면 패널이 기울어진 각도) 그 임팩트의 규모는 철저히 제한적인 것처럼 보인다. 개폐식 지붕이 있는 대형 경기장과 같은, 보다 전통적인 키네틱 아키텍처는 그 변화가 매우 단순하고 예상 가능하다는—열리거나, 닫히거나—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공간의 임팩트를 극대화하려면, 하드웨어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을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그 안의 프로그램이나 컨텐츠와 적극적으로 연계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달리 빠른 변화, 또는 완전한 교체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임팩트를 창출하기에 더 적합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건물의 외벽에 조명을 설치해 만들어지는 미디어 파사드는 미디어 컨텐츠를 건물과 결합해 표현할 수 있는 장치이다. 해가 진 후 남산 서울스퀘어나 명동 신세계백화점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영상들이 이것을 통해 상영되는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는 그 자체로는 단순한 스크린과 다르지 않지만, 건물의 용도와 프로그램, 또는 건물 입면의 큰 스케일이라는 특수성과 연계된 컨텐츠 큐레이션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건물 외부로부터의 전체적 경험을 지속적으로, 또 크게 바꾼다는 점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는 연말마다 그해 제작한 크리스마스 시즌 영상을 상영하는데, 이것은 “압도적인 크기와 화려한 영상으로 공연을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는 등의 평가를 받으며 매년 사람들을 모으고 화제가 된다. 반영구적인 하드웨어와 한시적인 소프트웨어 컨텐츠가 결합하여 큰 임팩트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공간이 수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컨텐츠를 유연하게 담아낼 수 있는 건축적 기획 또한 임팩트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팝업 스토어나 게릴라 전시, 버스킹 스테이지처럼 감각적인 경험을 임팩트로 옮겨내고자 하는 초단기적 프로그램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받아들이되 그 중 어느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을 수 있는 ‘호스팅 하드웨어’를 어떻게 공간적으로 구현할 것인가 하는 것은 건축을 통해 정의되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성수동의 카페 ‘쎈느’는 리그 오브 레전드부터 크리스천 디올에 이르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팝업 스토어를 호스팅하고 각 브랜드에 어울리는 스페셜 음료를 출시하는데, 이것은 오픈 천장과 대형 창문들이 만드는 개방감 있는 구조, 개성을 절제한 흰색 인테리어, 임시로 조형물 등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넓은 앞마당의 존재와 같은 공간적 요소들 덕분에 가능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파빌리온과 같은 임시 구조물 또한 단일한 초단기적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적 솔루션으로 볼 수 있는데, 당연하게도 이것은 영구적이되 유연한 하드웨어를 구현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기획을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하드웨어라는 조건 하에서도 최대한의 임팩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 건축의 시도들은, 과연 어느 지점까지 임팩트가 추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의문을 끄집어낸다. 미국 시트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에서 테드(공교롭게도 건축가이다)와 그의 친구 바니는 잊지 못할 하루하루를 살고자 매일 무모한 도전들을 하지만, 결국 매일이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모든 날이 전설적인 날이라면, 그 어느 날도 전설적인 날이 아닌 거야.” 같은 의미에서, 기본의 것,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면 그것과 대조되는 새롭고 자극적인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에 임팩트가 있다면, 그 어떤 것에도 임팩트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임팩트의 시대에 건축이 선택할 수 있는 두 번째 방향성은 ‘임팩트’를 좇기보다 가장 기본의 ‘편안함’에 더욱 집중하는 방식이다. 이때 편안하다는 것은 푹신한 의자에 앉았을 때와 같은 신체적 쾌적함뿐 아니라, 마음의 안온함이나 보호받는 느낌과 같은 개념들까지도 모두 포괄한다. 강렬하고 파편화된 감각들에서 벗어나, 미묘하되 보다 본질적이고 장기적인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른 분야와 비교해 건축이 가지는 조건들—하드웨어가 필수적이라는 점, 반영구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휘발성 변화가 어렵다는 점—은 이제 제약이 아니라 기회로 보인다. 제주에 지어진 이타미 준의 〈바람 박물관〉은 나무판을 띄엄띄엄 잇고 내부는 비워 놓은 단순한 건물이지만, 그곳에 잠시 있으면 바람이 판자 사이를 통과하는 소리와 시간에 따른 그림자의 느린 변화를 섬세하게 느끼게 된다. 자연과 연결되었음을, 그리고 살아있음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미묘한 경험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그러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빠르게 변하는 것들로부터의 휴식을 제공한다. 그래서 이 두 번째 방향이 지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과하지 않고 ‘편안한’ 공간적 경험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임팩트의 건축’이 상업적 프로그램에 어울린다면 ‘편안함의 건축’은 집과 같은 철저한 일상의 공간에 특히 적합해 보이지만, 〈바람 박물관〉에서 보듯 적절한 기획이 있다면 충분히 일상의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강렬하거나 편안하거나. 임팩트 시대의 건축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이다. 이런 양가적 접근은 새로움을 요구하는 흐름에 적극적으로 감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편안한 공간의 존재는 분명히 시대와 통하는 측면이 있다. 삶의 다른 영역들에서 의도되는 임팩트를 보다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기준선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거꾸로, 변하지 않는 편안함의 가치 또한 많은 것이 임팩트를 추구하는 바로 지금 더 잘 드러난다. 아무리 임팩트의 시대이더라도, 임팩트가 편안함과 균형을 이루며 공존할 때 우리는 둘 모두를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경진 (2021.12.27). 신세계 '인생샷 명소' 대박 뒤엔, 韓 포기한 이 기술 있었다. 중앙일보.
염지은 (2013.12.26). 2014 문화예술 트렌드…가볍고 편하게 '스낵 컬처’. 뉴스1.
임명묵 (2021). K를 생각한다 (초판, pp. 69-73). 사이드웨이.
한은주 (2021). 운율적 지형학의 공간: 키네틱 인터랙션 건축. SPACE 56(8), pp. 7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