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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무브 Dec 24. 2021

가장 제주스러운 로컬 이야기, 해녀의 부엌



제주의 해안 풍경

제주의 해안선을 따라 걸어보셨나요? 제주의 해변으로 가기 위한 여정에는 푸른빛 아름다운 바다와 구멍이 송송 뚫린 돌들이 자주 보이지요. 더불어 제주의 바다에는 해녀들이 있습니다. 해안도로를 지나다 보면 해녀의 집이나 갓잡아 올린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을 종종 볼 수 있고 구좌읍 하도리에는 해녀들의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해녀박물관도 만들어져 있죠. 그러나 정작 해녀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기회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해녀의 부엌'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는 부둣가에 방치되어 있던 오래된 어판장을 극장 겸 식당으로 개조한 '해녀의 부엌'이란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제주 해녀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면서 해녀들이 바다에서 채취하고 기른 해산물로 구성한 다이닝 메뉴를 제공하는데요. 예약을 통해 발걸음 한 관객들에게 총 100여분 간의 연극공연과 해산물 요리를 선보이고, 마지막에는 손님들이 밥을 먹으며 작성한 질의에 응답하는 Q&A 시간이 진행된다고 해요. 이 대화의 시간을 통해 바다 밑으로 들어가 물질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이나 제주 바닷속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같은 해녀의 일상과 물질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연극인과 해녀들이 공연과 해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 출처 : 해녀의부엌 홈페이지)




지속가능한 삶으로의 전환

제주만의 로컬 특산물과 제주의 해녀문화 알리기


'해녀의 부엌'은 제주의 해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해녀들과 함께 자란 한 청년이 느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김하원 대표는 서울에서 연극을 배우고 연극인의 삶을 사는 동안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해녀들이 힘겹게 잡은 해산물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됐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했다고 해요. 


제주의 해녀들이 물질을 통해 건져 올린 톳이나 뿔소라 같은 해산물은 국내 해산물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일한 창구인 일본에서는 자연산이 아닌 양식으로 취급되어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해요. 제주로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흑돼지나 전복처럼 제주의 먹거리로 각인되어 있다거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 활발한 소비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못한 상태인 거죠. 게다가 제주의 해녀는 1만4천명 정도가 활동했던 1970년대와 달리 현재 약 3천8백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백 명 가까이 줄어드는데 새로 유입되는 청장년층은 3~40명 안팎으로 감소하는 추세라고 해요.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도 해녀가 바다에서 건져낸 해산물과 이를 활용한 요리 문화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던 거죠.


해녀 관련 콘텐츠를 제공, 해녀의 전통 보전 및 제주 해산물의 가치를 전달하는 해녀의 부엌 (출처 : 이로운넷)


김하원 대표는 연극원 출신 동료들과 뜻을 모아 제주 해녀의 삶을 소재로 한 연극을 기획하고 일생에 걸쳐 물질을 해온 해녀들이 직접 출연하도록 기획했습니다. 여기에 직접 건져 올린 해산물로 만든 제주식 음식 메뉴를 결합시켜 이야기와 요리가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초기에는 컨텐츠에 주력해 공모전이나 지원사업에 도전했으나 지속가능한 모델을 위해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을 찾다 보니 공연과 식사를 접목하게 되었다고 해요. 공연과 다이닝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에서 연극을 보고 해산물 요리를 먹는 경험을 통해 제주 해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 메뉴로 나온 뿔소라, 군소, 성게, 우뭇가사리, 톳 등 각각의 해산물에 담긴 이야기, 제주 전통요리 레시피에 대한 이야기, 해녀가 들려주는 물질의 노하우도 들어볼 수 있도록 한 거죠.


특히 공연은 해녀들의 삶과 일상을 주제로 한 4편의 '해녀 이야기'가 종달리 해녀 네 명의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요. 엄마의 뒤를 이어 해녀의 삶을 숙명으로 삼고 살아온 90세 최고령 해녀,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공부를 포기한 해녀, 뱃속에 아이를 품은 채 원정 물질을 떠나 사고를 당한 해녀, 해녀가 되기 싫어 도망쳤지만 자식을 위해 다시 물질을 해야만 했던 해녀 등 바다로부터 삶과 죽음을 동시에 건네 받은 해녀들의 역설적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연극을 통해 접한 해녀의 일생과 문화는 박물관의 사진이나 설명글로 읽은 이야기보다 훨씬 생생하고 기억에 오래 남겠죠.


연극공연과 더불어 식사를 제공하는 ‘체험형 프로그램’ 해녀의 부엌 (사진 출처 : 해녀의부엌 홈페이지)




제주만의 로컬 컨텐츠를 세계로


'해녀의 부엌'은 해녀의 숨이 묻은 제주 해산물이 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도록, 국내 뿐만이 아니라 세계인의 식탁에서 그 고유의 특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녀의 삶과 그 지역의 문화, 지역의 삶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녀의 부엌'에는 공연부터 식사제공에 이르는 모든 일을 50세부터 90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해녀 7명과 20대 청년 예술인 7명이 함께 하고 있다고 해요. 다이닝 메뉴의 레시피는 지역주민들의 레시피를 조금 더 개발하여 구성한 것으로 종달리의 지역주민들이 직접 요리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금토일에는 예약을 통해 공연과 다이닝을 선보이고 공연이 없는 날에는 뿔소라로 만든 가공식품 판매 및 홍보 활동에 주력한다고 해요.


오픈 준비중인 해녀의 부엌 2호점 북촌점 (사진 출처 : 해녀의부엌 인스타그램)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내듯 '해녀의 부엌'은 새로운 형태의 지역밀착형 문화관광 체험상품으로 주목받으며 지역사회와 관광객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고 해요. 오픈 후 2년 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약 4만 명이 다녀갔다고 하죠. 최근에는 더욱 특색있는 체험문화를 선보이기 위해 제주 조천읍 북촌리에 2호점을 차렸다는 소식도 있어요.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하는 미디어 아트 레스토랑 공간을 개시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에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나와 배가 고플 때, 강한 추위로 불을 땔 나무조차 구하기 어려울 때, 해조류 감태를 태워 뿔소라를 구워 먹던 문화를 재현한 공간 배치와 마치 바닷속에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구현한 미디어 아트를 구성했다고 해요. 이곳에 놓인 의자도 더 이상 못 쓰게 된 해녀복을 업사이클 해서 만들었다고 하고요. 


제주만의 문화와 특색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매진하고 있는 '해녀의 부엌'은 이 여정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길 바란다고 합니다. 뿔소라 하나로 시작했지만 추후 제주의 모든 특산물이 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해산물을 취급하는 게 목표라고 해요. '해녀의 부엌'을 통해 이제야 제주를 이해하고, 이제야 제주의 해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후기가 넘실거리는 예약 페이지를 보면서 앞으로의 '해녀의 부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하게 됩니다.


"스토리가 담긴 공간을 만들었고, 유통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까지 완성됐어요. 그런데 이 것들이 이제 와 보니 다 연결 돼있는 것 같아요. 해녀들이 있기에 2080을 아우르는 경쟁력을 가지게 된 거죠. 최고의 파트너인 해녀와 상생하는 2080 공동체를 만들고자 해요. 로컬 사업도 사업이고 결국 매출과 성장이 목표니까요. 상생이 우리의 비전이에요."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커버 이미지

출처 : 해녀의부엌 홈페이지


참고 자료


[사이트] 해녀의 부엌. 홈페이지

[기사] 한겨레. 해녀 삶과 해산물…연극에 요리를 더한 ‘해녀의부엌’

[기사] 제주일보. 고령화에 진입장벽까지...제주해녀 '사라진다'

[기사] 서울경제. ‘해녀의 부엌’으로 제주 엄마들의 이야기를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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