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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씨 Jun 30. 2019

비둘기 응가

현人과의 대화 2

- 열 살 딸 ‘현’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을 배워가는 동갑내기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




때는 2002년 3학년, 그 해 가을 난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영화광이라 자부하던 나는 매년 가을 중간고사 기간과 딱 겹치는 영화제에 올인했다. 하루 세 편을 기본으로 밤새 공포영화 네 편을 보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집으로 가거나, 죽을 때까지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해외의 유명 배우와 감독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관객들 반 이상이 도중에 포기하고 나가버리는 힘든(?) 작품을 보거나 혼밥과 혼영과 혼잠이 자연스러운 그 영화제의 공기가 좋았다. 


어쩌면 조금 더 깊은 영화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자원봉사자에 지원을 했던 것 같다. 영화제를 찾은 세계 각국의 영화인들은 물론 관객들과 만나는 일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짧은 영어 탓에 몸으로 때우느라 힘들긴 했지만, 모든 것이 마냥 다 좋았다. 매일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고 자정이 넘어 들어가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도 못 느낄 만큼 열정 가득했던 이십 대 초반의 그 젊음이 종종 그립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짧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뛰듯이 상영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앗 차거!' 정수리에 기분 나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인파로 붐비는 남포동 대로를 걷던 내 머리 위는 오직 하늘뿐이거늘 어디서 떨어진 물이지? 상상도 하기 싫은 결론이 났다. 내 정수리가, 하늘이 삶의 터전인 비둘기의 화장실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서둘러 근처 화장실로 들어가 여러 번 씻어냈다. 머리를 감을 시간도, 장소도 없으니 나로선 최선을 다한 처치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기 전까지 나만 느끼는 비둘기 똥 냄새에 코가 마비되는 듯 한 착각에 시달렸다. 내가 키가 커서 내 정수리에만 떨어진 걸까? 내 정수리가 비둘기에게 유달리 이뻐 보였나? 비둘기 똥이 인간의 정수리에 떨어질 확률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순간의 불쾌감은 세상 모든 불행이 나에게로 향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난 절망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비둘기를 미워하거나 경멸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 날의 일을, 비둘기 똥이 정수리에 떨어졌던 사실조차 잊고 살아갈 만큼 나는 강한 내면을 지닌 인간이었다. 적어도 두 번째로 비둘기 똥을 맞기 전까지는. 내 정신력은 두 번째 경험, 그 날 이후로 무너졌다. 비둘기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똥'이라는 이미지와 촉감을 정수리에, 비릿한 향기를 콧구멍에 선물해주셨다.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을 즐기는 현


여느 날처럼 현을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는데 비둘기 두세 마리가 땅바닥을 쪼고 있다 날아갔다. 문득 나의 슬픈 과거를 현에게 위로받고 싶어 졌다. 비둘기 똥이 정수리에 두 번이나 떨어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밖에 없을 거라며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선 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소통과 공감의 아이콘 현은 없었다. 그게 뭐 별일이냐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녀가 뱉어냈다.

                    

"남들은 한 번 맞기도 힘든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맞은 건 행운이야 엄마. 생각을 바꿔봐. 나만 겪었던 일이니까 행운이지 그건."        


응?

행운이라구?

처음에는 욱해서 네가 정수리에 비둘기 똥을 맞아봐야 그런 말이 안 나오지 싶었다. 이걸 긍정적이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순간 멍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인가 보다.

           

쓸어도 쓸어도 자꾸만 쌓이는 가을 낙엽들.


작은 앞마당 가득 가을바람에 쓸려 들어온 낙엽들과 쓰레기들을 보며 나의 두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에고 비질 한참 해야겠네. 바람이 세서 맨날 쓸어야 하니 너무 힘들겠다 언니야.”

“어머 우리 마당에 지나가던 복들이 다 굴러들어 왔네.”


작은 고모는 이 대화를 나에게 들려주며 그래서 큰 고모가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사나 보다며 한숨을 쉬었다. 굴러들어 온 쓰레기는 어떻게 해도 치워야 할 일거리지만 큰 고모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겪은 불행은 생각하기에 때라 행복이 될 수도 있다. 행과 불행의 차이는 결국 생각의 차이다. 

          

현과의 유쾌한(?) 대화 이후로 이제 비둘기를 보아도 두 번의 슬픈 과거가 떠오르기보다 쓱 미소가 지어진다. 예순을 훌쩍 넘긴 큰 고모의 삶의 태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을지 살아가며 만들어졌을지 모르겠다. 살아가며 어떤 고난들을 맞을지 모를 현에게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이 밝고 맑은 마음을, 탁해지지 않는 계산 없는 순수함을 지켜갈 힘을 주고 싶다.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고마운 딸이다. 그래 이제부터 난 정수리에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맞아 본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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