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人과의 대화 2
- 열 살 딸 ‘현’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을 배워가는 동갑내기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
때는 2002년 3학년, 그 해 가을 난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영화광이라 자부하던 나는 매년 가을 중간고사 기간과 딱 겹치는 영화제에 올인했다. 하루 세 편을 기본으로 밤새 공포영화 네 편을 보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집으로 가거나, 죽을 때까지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해외의 유명 배우와 감독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관객들 반 이상이 도중에 포기하고 나가버리는 힘든(?) 작품을 보거나 혼밥과 혼영과 혼잠이 자연스러운 그 영화제의 공기가 좋았다.
어쩌면 조금 더 깊은 영화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자원봉사자에 지원을 했던 것 같다. 영화제를 찾은 세계 각국의 영화인들은 물론 관객들과 만나는 일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짧은 영어 탓에 몸으로 때우느라 힘들긴 했지만, 모든 것이 마냥 다 좋았다. 매일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고 자정이 넘어 들어가도 피로가 누적되는 것도 못 느낄 만큼 열정 가득했던 이십 대 초반의 그 젊음이 종종 그립다.
사건이 있던 그날도 짧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뛰듯이 상영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앗 차거!' 정수리에 기분 나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인파로 붐비는 남포동 대로를 걷던 내 머리 위는 오직 하늘뿐이거늘 어디서 떨어진 물이지? 상상도 하기 싫은 결론이 났다. 내 정수리가, 하늘이 삶의 터전인 비둘기의 화장실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서둘러 근처 화장실로 들어가 여러 번 씻어냈다. 머리를 감을 시간도, 장소도 없으니 나로선 최선을 다한 처치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기 전까지 나만 느끼는 비둘기 똥 냄새에 코가 마비되는 듯 한 착각에 시달렸다. 내가 키가 커서 내 정수리에만 떨어진 걸까? 내 정수리가 비둘기에게 유달리 이뻐 보였나? 비둘기 똥이 인간의 정수리에 떨어질 확률은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 순간의 불쾌감은 세상 모든 불행이 나에게로 향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난 절망에 사로잡혀 삶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비둘기를 미워하거나 경멸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 날의 일을, 비둘기 똥이 정수리에 떨어졌던 사실조차 잊고 살아갈 만큼 나는 강한 내면을 지닌 인간이었다. 적어도 두 번째로 비둘기 똥을 맞기 전까지는. 내 정신력은 두 번째 경험, 그 날 이후로 무너졌다. 비둘기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똥'이라는 이미지와 촉감을 정수리에, 비릿한 향기를 콧구멍에 선물해주셨다.
여느 날처럼 현을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는데 비둘기 두세 마리가 땅바닥을 쪼고 있다 날아갔다. 문득 나의 슬픈 과거를 현에게 위로받고 싶어 졌다. 비둘기 똥이 정수리에 두 번이나 떨어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엄마밖에 없을 거라며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선 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소통과 공감의 아이콘 현은 없었다. 그게 뭐 별일이냐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녀가 뱉어냈다.
"남들은 한 번 맞기도 힘든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맞은 건 행운이야 엄마. 생각을 바꿔봐. 나만 겪었던 일이니까 행운이지 그건."
응?
행운이라구?
처음에는 욱해서 네가 정수리에 비둘기 똥을 맞아봐야 그런 말이 안 나오지 싶었다. 이걸 긍정적이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 말을 제대로 듣기는 한 건지 순간 멍 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인가 보다.
작은 앞마당 가득 가을바람에 쓸려 들어온 낙엽들과 쓰레기들을 보며 나의 두 고모는 이렇게 말했다.
“에고 비질 한참 해야겠네. 바람이 세서 맨날 쓸어야 하니 너무 힘들겠다 언니야.”
“어머 우리 마당에 지나가던 복들이 다 굴러들어 왔네.”
작은 고모는 이 대화를 나에게 들려주며 그래서 큰 고모가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사나 보다며 한숨을 쉬었다. 굴러들어 온 쓰레기는 어떻게 해도 치워야 할 일거리지만 큰 고모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겪은 불행은 생각하기에 때라 행복이 될 수도 있다. 행과 불행의 차이는 결국 생각의 차이다.
현과의 유쾌한(?) 대화 이후로 이제 비둘기를 보아도 두 번의 슬픈 과거가 떠오르기보다 쓱 미소가 지어진다. 예순을 훌쩍 넘긴 큰 고모의 삶의 태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을지 살아가며 만들어졌을지 모르겠다. 살아가며 어떤 고난들을 맞을지 모를 현에게 내가 지켜줄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이 밝고 맑은 마음을, 탁해지지 않는 계산 없는 순수함을 지켜갈 힘을 주고 싶다.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고마운 딸이다. 그래 이제부터 난 정수리에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맞아 본 행운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