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들에 감사하며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그래서 수술을 해야한다는건가? 혹시라도 이게 암이라는건가? 어디에 뭐가 있다는 거지?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자, 서른이 넘은 나는 지금 어른이어야하고, 담담해야한다며 자기 주문을 외우며 진료실로 향했다. 매번 남편과 함께 오던 산부인과를 아무일 없을 거라며 혼자 온 것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월요일 오전 시간에 온 것까지. 이름이 불리는 그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며 내가 한 모든 선택에 후회를 했다.
원장님의 방으로 들어가자 방금 외래 진료에서 찍었던 초음파 사진을 보고 계셨고,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발리에서 있었던 원인을 알 수 없던 통증 역시 난소의 혹 때문에 난소가 꼬여서 발생했던 통증이었으며, 보통 그럴 경우 응급 수술을 진행하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꼬였던 난소가 저절로 풀어져서 통증이 덜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차라리 발리에서는 몰랐던게 오히려 잘 된 일이었을까.
보통 난소의 혹은 4cm미만의 혹들이 많고 이런 경우 자연적으로 생겼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 본인도 잘 모르고 지나가는 케이스가 많다고 한다. 5cm 이상일 경우는 수술로 제거를 하는게 맞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9cm가 넘는 혹이었고, 정확한 진단명은 난소종양. 진단명만으로도 무시무시한데 원장님은 CT를 찍어야 나쁜놈인지 그래도 착한놈인지 알 수 있다고 더 무시무시한 말을 하셨다.
진료가 끝나고 방에서 나오자마자 잡고있던 긴장의 끈들이 놓아지고 과호흡이 시작됐다. 잊고 있었다. 공황장애가 있었다는 것도. 한 5년전 쯤이었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압박감과 그 외의 감당 못할 스트레스들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시작되었고 치료를 시작하고 1년쯤 후에 둘째가 생기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다. 급하게 사람이 없는 화장실을 찾아들어가 과호흡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눈물이 어찌나 그렇게 나는지. 아직 결정된 것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지.
과호흡이 조금 진정되고나서 상담실로 갔다. 상담실에서는 CT는 당일 찍지 못하니 예약을 잡고 가라며 다른 검사들은 그 후에 결정이 된다고 하셨다. 상담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예약을 잡고 나오니 더욱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 뱃속에 지금 원인 모를 혹이 자라고 있고, 수술을 해야된다는 엄청난 사실이. 매번 검사를 하거나 초음파를 할 때도, 아이를 둘이나 낳을 때도, 자궁이 정말 깨끗하고 튼튼하고 건강하다는 말을 매번 들어왔던터라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갑자기 왠 혹이며, 그것도 수술밖에 방법이 없는 혹인지.
병원을 나서며 남편에게 카톡을 몇 자 남기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아야하는데, 몰려오는 걱정과 고민들로 선뜻 시동을 걸지 못하고 검색창에 '난소종양', '난소 수술' 등의 키워드만 몇 번을 검색했지만 내가 원하는 희망적인 이야기, 예를 들면 저절로 혹이 줄었다거나 수술없이 치료가 가능하다든가 등의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아이들 하원 시간이 점점 다가와서 어쩔 수 없이 출발했다. 수술을 하게되면 필연적으로 입원을 해야할텐데 그럼 아이들은 어쩌지. 이제 나는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