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들에 감사하며

아무렇지 않지 않아!

by 몽플레지에

어떻게 저떻게 간신히 차를 끌고 집으로 왔다. 아이들을 픽업해오니 다시 또 일상이 되었다. 당장의 통증이 없으니 삶이 달라질 건 없었다. 아이들과 정신없는 오후 시간을 잘 보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니 다시 또 두려움이 몰려온다. 신랑이 퇴근하고 오니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놓고있던 긴장의 끈이 톡 끊어진 것일까. 그래도 차마 남편 앞에서 울 수는 없어서 화장실에 숨어 또 울어버렸다. 남들 앞에서는 담담한 척, 괜찮은 척 했지만 혼자있는 시간에는 혹시라도 있을 1%,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 도저히 담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고 CT를 찍으러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조영제를 쓰는 CT촬영이라 혈관 주사를 맞아야한다. 어릴 때부터 주사 바늘이 왜 그렇게 싫은지. 어떤 병원이든지 가서 진료 받을 때 마다 꼭 덧붙였다. "선생님, 주사는 안맞고 약으로 받아갈게요." 어떻게든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주사 바늘이었다. 그렇게 피했던 주사였는데 어쩔 수 있나.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하는 말씀. "수술용 바늘이라 많이 아픕니다." 이런. 꼭 이걸로 맞아야 되냐며, 정말 많이 아프냐며, 긴장한 몸을 이완시키기 위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해가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애썼다.


우여곡절 끝에 링겔을 매단 채로 CT실로 향했다.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지. CT실 역시 붐볐다. 수액이 들어가고 있는 팔은 불편하고. 내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주사를 맞을 때 너무 긴장했던 탓에 머리가 빙글 돌고 속이 메슥거렸다. 가끔 긴장을 하면 이렇게 몸에서 반응한다. 조금 앉아서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쯤 내 이름이 불렸다. 타이밍도 참.


CT실로 들어갔더니 이제 조영제를 투여할텐데 조영제가 몸으로 들어가면 뜨거운 느낌이 드니 놀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만세를 한 자세로 CT 기계 위에 누웠다. 아무도 없는 공간. 기계음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숨을 참고 편하게 쉬라는 몇 번의 안내음. 조영제가 몸으로 들어오며 뜨거워지니 내 몸의 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껴졌다. 목 안쪽의 깊숙한 곳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금새 괜찮아졌다.


며칠 후 다시 내원했다. CT 결과를 듣기 위해서. 결과에 따라 수술 방법 등이 결정된다고 하셨다. 초음파로 봤던 커다란 크기의 혹이 CT로 보니 더 잘 보였다. 원장님도 크기가 꽤 크다고 수술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복강경 수술로 진행이 되고, 입원은 3박 4일이라고 하셨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왔지만 정신이 아득했다. 머릿속에는 아이들 생각뿐이었다. 아직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인데. 엄마와 떨어진 적이 없는 아이들을 두고 3박 4일 입원이라니. 그래도 주말을 최대한 이용하면 친정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원장님께 주말 수술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웃으시며 저희도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는다고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수술을 진행할 수 있으니 언제가 편하겠냐 물으셨다. 당연히 금요일이죠. 하지만 역시나 금요일은 인기가 많은 날짜였다. 당장 수술을 해야하는데 선택지는 금요일밖에 없었다. 원장님은 그러면 가장 빠른 금요일에 병원에서 조금 대기를 하다가 수술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저번 주 수술한 다른 분은 오전 10시에 병원에 도착해 저녁 6시에 수술을 받았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다음으로 수술 진행 과정을 알려주셨다. 복강경 수술로 단일공을 기대했으나 두 개의 구멍을 내야했다. 아이 둘을 제왕절개로 낳아 유착이 있을 수 있는데, 유착이 심할 경우 개복해야한다고 하시며 난소 종양에 대한 설명과 수술 방법, 그리고 수술 전 주의사항 몇 가지를 알려주셨다. 나에게는 생애 처음 있는 일이지만, 이 병원에서는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복잡하고 심란했던 나의 감정과 대수롭지 않은, 별 일 아닌듯한 병원의 태도 사이에 혼란을 느끼며 병원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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