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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제이 Jul 07. 2020

북한산 비봉과 진흥왕순수비 정복기

템플스테이 하러 왔다가 비봉 탄 이야기

나 홀로 산의 정기를 느끼기 위해 떠난 템플스테이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북한산 비봉과 진흥왕순수비를 만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템플스테이 장소인 금선사로 가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참이나 갔을까? 처음 와보는 동네에 내려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뭔가 부내 나는 저택들이 즐비하게 계곡을 따라 들어선 풍경이 굉장히 낯설었다. 그렇게 저택 구경을 하며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다 보니 북한산 입장을 알리는 입구가 나왔다. 산길을 조금 더 올라가니 드디어 금선사가 나왔다. 귀여운 백구와 아담한 절이 위치한 금선사는 산속에 폭 안겨 아늑한 느낌을 주는 부처님의 품속 같은 곳이었다. 대웅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 템플스테이 안내를 받았다. 일정 안내를 받으면서 다음날 일정을 추천받았는데 금선사 바로 근처에 비봉이 있어서 올라가서 경치를 보면 좋다는 것이었다. 사실 템플스테이를 오면서 등산 생각까지는 못해서 등산화도 신지 않고 그냥 트레킹화를 신고 왔는데 등산 일정을 추천받으니 등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산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백운대에 한번 올라본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였다. 정확히는 금선사에 온 것이지만 금선사가 북한산에 있으니 북한산에 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북한산 비봉 등산을 계획하게 되어 검색을 해보니 비봉에 그 유명한 북한산진흥왕순수비가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진흥왕순수비가 비봉에 있었다니! 진흥왕순수비 가는 길이 좀 험하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어서 더 가보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비봉은 물론 진흥왕 순수비까지 같이 정복해주마! 등산 의지가 충만해져서 다음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날이 밝고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절복 차림으로 비봉 산행에 나서기 시작했다. 트레킹화라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킬로수가 생각보다 짧아서 금방 갔다오겠거니 하고 물병도 챙기지 않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밥 기운이 남아있어 산행 중반까지는 속도를 내서 오르막길을 쑥쑥 올라갔지만 중간쯤 되자 목도 마르고 슬슬 당이 떨어지는게 어질어질한 게 아니겠는가? 지쳐서 힘든 게 아니라 당 떨어지는 기분이 더 정확했다. 물이라도 챙겨 왔어야 했는데 어쩌자고 그냥 맨손으로 산을 올라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등산장비를 풀 착한 등산객들을 보자 내 꼴이 뭔가 웃겨서 실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순간 그냥 비봉 정복이고 뭐고 간에 다음에 올까 싶은 유혹도 들었다. 애초에 템플스테이 하러 온 거지 비봉 가자고 온건 아니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상 중도 하산하자니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지금껏 산을 타면서 정상을 정복하지 못한 건 맨 처음 도봉산 산행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정상을 반드시 올라갔다. 지도를 보니 3분의 2쯤 올라왔길래 바위에 기대어 잠시 쉬면서 기운을 차려 슬슬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능선이 보이고 비봉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가까워졌다. 내 옆을 스쳐가는 등산동호회로 보이는 어르신들 무리를 따라 비봉에 다가갔다. 어르신들 하는 이야기를 귓동냥으로 들으니 비봉이 바위 절벽이라 위험하다면서 올라갈 자신 있는 사람들만 가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흠,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겠지? 괜히 혼자 속으로 뜨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 장비는커녕 등산복도 아닌 절복을 입고 맨손으로 산에 올라온 꾀죄죄한 꼴의 등산객은 나뿐이었다. 흥 아무렴 어떤가. 저 어르신들 뒤를 쫓아가다 보면 비봉 정상도 나오고 진흥왕순수비도 나오겠거니 싶어서 뒤꽁무니를 쫄쫄 쫒아갔다. 조금 가다 보니 비봉 정상으로 가는 입구가 나오고 조망이 트이기 시작했다. 경치도 절경이지만 그 순간 불어온 바람이... 바람이... 얼마나 상쾌하고 싱그러운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산 바람이 불어왔다. 온몸으로 그 산 바람을 맞으니 마치 쇼생크 탈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서 만세를 외치며 비를 맞는 장면이 오버랩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기분에 도취되기는 일렀다. 시야에서 아직 진흥왕순수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디 숨어있나 싶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니 도저히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저 바위를 넘어가야만 하는 걸까? 싶은 의문이 드는 순간 등산객들이 웅성웅성하면서 아슬아슬한 경사의 바위를 올라가고 있었다. 개중에는 중간쯤 갔다가 무섭다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저길 올라가야겠구나 싶어서 절벽을 왼편에 낀 거의 90도 각도로 보이는 경사의 바위를 슬슬 사족보행으로 올라갔다. 그간의 산행으로 바위에 대한 두려움이 크진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쩌면 바위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무섭다고 중도 포기하는 바위가 나에게는 스릴 있고 재미있는 길로 느껴졌다. 그렇게 다소 거친 바윗길을 오르다 보니 저편 너머에 그토록 찾던 진흥왕 순수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저것이로구나!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진흥왕순수비 앞으로 다가갔다. 서울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있는 진흥왕순수비를 보니 왠지 모를 감격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옆에 모여있던 등산객들이 자진해서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옆에 가서 서보라고 했다. 냉큼 순수비 옆으로 다가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후다닥 금선사까지 다시 내려왔다. 비봉과 진흥왕순수비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올라올 때와는 달리 하산할 때는 가뿐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중도 하산했다면 비봉의 장관과 진흥왕순수비, 그리고 상쾌하고 시원했던 그 산바람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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