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시의성( 時宜性 )이 있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사과와 마찬가지로 시의성이 있는 것은 다음과 같으므로, 이 말들은 떠오르면 바로 하자.
1. 사랑한다.
2. 미안하다.
3. 고맙다.
*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는 위 1항 제외.
지인이 내게 학교폭력 상담 요청을 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장난으로 친구를 놀리는 행동을 몇 번 하고 욕설을 했는데,
그 친구의 부모가 그 일을 너무나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사과편지 형식의 ‘서면사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내 지인은 그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아이가 장난으로 한 행동들이고,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사과하라고 하셔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으면 됐지, 무슨 서면으로까지 사과를 하라는 것인지
같이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하다고 했다.
친구의 부모님은 아이가 지속적으로 괴로워하니
꼭 서면으로 진정성있게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지인은 그 요구를 과도하다고 생각했다.
어이없어하며 나에게 상담을 요청해 오기에
나는 생활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했다.
서면사과 하세요.
나의 지인은 내 조언에 실망감을 표현했고
결국 서면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서면사과를 외면하고 있던 중
아이 친구의 부모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경솔한 행동으로
다른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아이가 내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그렇다.
부모의 불안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아이와 관련하여 속상한 일이 있어 다른 부모의 사과를 받기도 하고
나도 사과하기도 하고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내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반에서 여러 여자 친구들을 놀리고 거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여자 친구에게는 미술시간에 서예 붓으로 얼굴에 닿을 듯 말 듯 어른거리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그 피해 여자 친구들이 쓴 진술서(귀여운 글씨로 피해 호소) 몇 장을 내미셨다.
읽다 보니 정말 내 아들이 맞나 싶었다.
평소 사건기록에서 피해자 진술조서를 많이 봤지만 이토록 혈압이 치솟지는 않았다.
선생님께도 사과드리고 재발하지 않도록 잘 지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여자 친구들과 부모님들께도 아이와 함께 사과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드렸다.
선생님은 일단 학부모인 내가 땡땡한 반응이나,
'애가 장난칠 수도 있죠 뭐.. 애가 자라다보면 그럴 수 도 있져..'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에 안도하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내게 속상했을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과하는 편지를 써서 오면 그것을 그 친구들에게 전해주겠다고 하셨다.
집에 와서 아들과 마주 앉아
어떤 마음으로, 왜 그랬는지 묻고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충동적으로 해놓고는
사태가 커지자, 후회하면서
친구들과 멀어질까 봐 겁도 먹은 상태였다.
나는 아들에게,
친구가 너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고
어떻게 해야 네가 다시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친구들에게 네가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친구가 너를 봐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며 대화를 했다(아들에 대한 화를 참느라 몸에 사리 생김).
선생님은 그 방법으로 사과편지를 제안하셨는데
너는 어떠냐고 물으니
아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꼭 친구들의 마음을 풀고 싶다고 했다.
이후 아들은 한석봉처럼 앉아서
사과할 친구들 명단을 정리한 다음
종이 여러 장을 들고 진지하게 사과편지를 작성했다.
나중에 그 사과편지 내용을 읽어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아들이 여러 면에서 평범하거나 조금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사과’ 분야에서는 영재였다.
많은 피고인들의 반성문을 보면서 이게 무슨 반성문이냐
자기변명이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 아들의 사과편지는 반성문계의 바이블이었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았다(할 것도 없었겠지만).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나열하고,
친구가 문제 삼는 일이 있었던 점에 대해서 인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친구가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고
자기라면 또 이런 일을 겪을까 봐 겁이 날 것 같다고 적었다.
자신은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 잘 대해주었던 너와 멀어지는 것이 슬퍼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후회한다는 내용도 적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사건으로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혼이 난 사실도 알려주었다.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편지를 쓴 아들은
정성스럽게 한 친구 한 친구마다 다른 스티커를 붙여서 등교했다.
나는 선생님께서 부모님들의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친구들의 부모님들께도 사과를 드릴 생각이었다.
그 이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읽은 친구들이 아들의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했다는 소식과
그 사과편지는 친구들이 집으로 가져가도록 했으며
그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별도로 문제 삼지 않았다는 말씀을 들었다.
나는 이날 사과를 받아준 친구들, 그 친구들의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고
일이 커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의 일 뿐만 아니다.
아이 손을 잡고 친구의 집에 가서 직접 그 아이와 부모님께 사과한 적도 있다.
어떤 때는 다른 친구가 내 아이를 다치게 해서
그 부모님의 사과를 받은 적도 있다.
사과편지와 상처에 붙이는 패치를 전달받은 적도 있고.
내가 지인에게
‘서면사과를 요구하면, 서면으로 사과하세요.’
라고 한 이유는
상대방의 발 빠른 사과로 내 마음을 풀어본 경험이 있고
나의 사과로 상대방이 사태를 키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로 끝날 일인데
상대방의 불안감을 키우거나 감정을 건드리면
학교폭력으로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옷깃을 잡거나 눈앞에 주먹이나 물건을 어른어른 거리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고,
친구들 앞에서 놀리는 말이 모욕이 될 수 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 말하는 학교폭력은 그 범위가 넓어서 걸면 걸리는 정도다.
거의 법률계의 '쌍끌이 대형 저인망'과도 같은 것이 학교폭력에 관한 법이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는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훼손ㆍ모욕, 공갈, 강요ㆍ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ㆍ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ㆍ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고 정의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피해학생 또는 그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회의를 소집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해학생으로서 처분을 받는다면 하나의 낙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촉법소년(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으로서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소년법에 의해 보호처분은 받을 수 있다.
소년보호처분이 전과가 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살다가 실수 한번 하여 형사재판을 받을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의 사건기록에는 ‘소년보호처분’ 전력도 나오게 된다. 상대 부모가 형사법적으로 문제 삼으면 이것 또한 힘든 경험이 될 수 있다.
------------------------------------
불의한 사과 요구나 누명을 쓰는 일에는
응당 다투어야 하겠지만,
내 자신 또는 내 아이가 잘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사과’를 조기에 ‘제대로’하는 것이 좋다.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에서 나의 지인은 끝까지 다투었고
이런 정도를 학교폭력으로 해서 가해자를 무한 양상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행정법원 판례에
학교폭력을 너무 넓게 인정하여 가해자를 무한 양산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학교폭력으로 문제가 되는 것을 떠나 일단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힌 것이 사실이라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힘들게 한 것이 사실이라면.
사과하고 상처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내 지인 아들의 경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결과 ‘학교폭력’으로 인정됐고,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 제17조 제1항 제1호의
서면사과 처분
을 받았다.
그냥 하면 되었을 서면사과를,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생활기록부에 기록까지 되면서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사과해서 나의 잘못을 인정하면
명예가 손상될 것 같고
사과하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감수해야 할 ‘계산된 위험’이기도 하다.
무모함과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