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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

by 몬스테라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된 40대 남자 피고인 김성권(가명)을 접견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이 사건 외에는 폭력적인 전과가 없었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청소년 시절 소년보호처분 전력도 없었다.

그에게 있는 전과는 과거에 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고

돈을 내지 않은 것이었다.

이 사건도 알코올 중독 병원에서 술 끊자고 입원했다가

알게 된 다른 알코올 중독자와

퇴원 후 술을 마시다가 말다툼을 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내가 물었다.

술을 왜 매일 마시는 거예요.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접견 내내 눈을 깔고 무기력하게 말했다.


“부모님이 앞을 못 보시거든요.. 부모님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셨어요.

어머니는 안마를 할 수 있어서 호텔에서 안마하는 일을 했지만 아버지는 동냥을 했어요. ”

안타깝지만 그게 매일 술 마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구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그가 동냥이라는 표현을 한 것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버지가 동냥하는 장소, 그 육교까지를 혼자서 못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늘 제가 아버지 동냥하는 데까지 모시고 가서 거기 앉아 있다가 다시 모시고 집으로 왔어요. 늘 그러고 살다 보니 위축되고 힘도 없고 우울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친구도 없고, 집에는 반찬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불 쓰는 요리를 하시기가 어려우니까 늘 간장하고 김 같은 걸로 밥 먹고, 동냥으로 돈을 벌다 보니 추우면 추운대로 힘들고 더우면 더운 대로 힘들고 돈이 안 벌어지기도 하고 그냥 다 힘들었어요.”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가 동냥한 돈은 그가 얼마인지 세어야 되었으며

동냥한 돈이 쌓이면 얼른 치워서 다시 빈 통으로 만드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다혈질인 아버지가 피고인에게 화가 나 피고인을 때릴 때면,

아버지는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마구 휘둘렀다.

어디를 때려야 치명상을 입히지 않고 때릴 수 있는지 아버지는 몰랐기 때문에

피고인은 아버지가 화를 내는 상황이 늘 위험하게 느껴졌다고도 했다.


피고인은 어릴 때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동냥을 따라다닌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아버지 눈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지만 제 눈엔 보이거든요.


피고인이 느꼈을 무기력함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그는 배움이 짧았고 가난했다.

어른이 되어 술을 알고 나서는 길고 긴 날을 매일같이

술을 친구 삼아 지냈다.


그는 내 또래였다.

증거가 명백하고 피고인이 인정하는 사건이라서

내가 이 사건에서 피고인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형식적으로라도 위안을 주고 싶었다.


“제가 형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다른 피고인들은 이렇게 얘기하면 좋아하는데

그는 여전히 무기력했다.


힘없이 앉아 있던 그가 혼잣말을 했다.

“여기서 언제 나가는지 문제가 아니라... 나가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게 막막합니다.”


그도 벗어나고 싶어 하고, 이런 인생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다.


20여 년 전 내가 무궁화호 기차를 탔을 때이다.


당시에는 기차 통로로 도시락과 음료와 간식을 실은 카트가 지나다녔고

그것을 구입한 후 자기 좌석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나의 대각선 좌석에 중년 남자와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중년 남자는 아이에게 도시락을 사라고 시켰다.

도시락을 실은 카트가 그 좌석을 지날 무렵 남자아이는 도시락을 한 개 샀다.

그리고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김밥이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도시락 뚜껑을 연 다음 젓가락이 아닌 손으로 김밥을 먹었고 아들에게는 주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먹는 것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 중년 남자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저 사람은 아들이 손으로 김밥을 허겁지겁 먹는 아버지 모습을 쳐다보는 다른 승객의 눈치를 살피고, 한편으로는 배고픈 듯 김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까. 아버지는 아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들의 처지와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일까'.. 생각했었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마음이 무거웠다.


접견 당시 나는,

아이가 잠든 후 맥주 한 캔 하며 드라마를 보는 습관을 끊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혼자서 맥주를 마시며 유퀴즈 같은 것을 다시 보기로 보면서 웃기도 하고,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반성하며 울기도 하고, 음주 독서를 할 때도 있었다.


그 시간은 내가 나와 함께 노는 시간이고 어떤 때에는 힘든 하루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날은 안 마시고 그냥 자고 싶은데도

맥주 한 캔 하지 않으면 숙제를 하지 않고 자는 느낌, 루틴이 깨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나는 맥주를 마시지 않기 위해 집에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절제의 미덕’이라고 붙여 놓았다가

‘미덕’ 사이에 체크표시를 하고 ‘더’를 써넣어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절제의 미더덕’으로 고친 뒤

다시 맥주를 마신적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나의 금주 도전기와 실패담을 들려주었고 그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강제입원 1년 후 퇴원하는 날 마셨다고.


“김성권씨가 술을 끊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저도 그렇다고 생각할 때면 무기력해져요. 그렇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권씨는 구속되어 있으니 자동적으로 금주할 것이고, 저는 김성권씨 재판 날이 18일이니까, 그날까지 안 마실게요.하루하루 김성권씨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아볼게요. 그리고 재판 날까지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편지 쓸게요.제가 참은 하루는 김성권씨 나가면 100일로 칩시다?"

그는 무기력했지만 옅은 미소를 보였다.

내가 손을 들고 파이팅이라고 하자 그가 쑥스럽게 손을 들고

파이팅.이라고 했다.


그날부터 매일 재판 날까지 피고인에게 인터넷 서신을 보냈다.


피고인에게 서신을 전달하는 교도관이 그 서신을 보았다면,

분명히 변호인이 보내는 서신인데 첫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편지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김성권 씨, 저는 어제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매일 쓰다 보니 재판 전 날 마지막 편지를 쓰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어느 날 자기 자신이 자신의 보호자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세상이 지켜주지 못하고 가족이 힘이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나를 지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수감되어 있는 기간 동안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듯 김성권 씨의 의지와 마음이 자라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는 나에게 한 번도 답장을 한 적이 없었고 재판부에 반성문도 내지 않았다.

아마 노숙 상태에서 구속되어 우표나 종이를 살 돈이 없었을 것이다.

재판장님은 기록에 나타난 사정들을 보시고 피고인에게 어린 시절 고생이 많았다며

김성권씨는 자기 인생에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제는 술 마시지 말고 심히 일하면서 건강도 챙기라는 덕담도 하셨다.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제가 술을 마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제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법정에서 피고인과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지만

그가 재판 후 교도관과 구속 피고인 대기실로 들어가면서 나에게 한 목례에서

그로부터 그간 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그는 선고날 집행유예를 받아 석방되었다.

출소한 날 바로 다시 마실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생겨 드문드문이라도 작심삼일을 반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이겨낼 수 있고,


자신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


-왕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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