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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r 13. 2022

소년을 보다. - 가정폭력


아내와 딸을 등산 스틱으로 폭행해서 상해를 입혔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60대 후반 남자  피고인의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는 당뇨와 고혈압이 있었고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했다. 치아도 거의 없었다. 사무실에서 상담할 때와 재판 때에는 그의 친구가 동행했다.


그 피고인에게는 가정폭력으로 가정보호처분을 받은 전력이 여러 개 있었다.   피고인과 친구는 모두 억울하게 신고된 사건이라고 했다.


피고인은 살면서 처자식을 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피고인과 친구의 설명에 의하면, 피고인은 한 때 안정된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었고 그의 명의로 된 집이 있는데, 그가 퇴직하고 건강이 나빠진 후 처와 딸이 그를 내쫓고 집을 처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처와 딸은 더 이상 돈을 벌어오지 못하고 의료비만 소비하는 피고인이 죽기만을 바란다고 했다.  

  

그의 친구는 자신이 지켜본 결과 모든 얘기가 사실이라고 했다. 고인이 정말 좋은 사람이고 지인들이 다 인정하는 호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악녀 같은 처와 그에 동조하는 자식들 때문에 평생 마음고생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피고인은 눈물을 흘리며 신세를 한탄했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했는데 이제 늙고 병이 드니 가족들이 자신을 애물단지 취급한다고.

집에서 나가라고 할 때 나가지 않으니 처와 딸이 수시로 피고인을 가정폭력으로 신고하고 분리를 요청했다고 한다. 피고인은 앞도 잘 보지 못하고 겨우 걷는 자신이 무슨 힘이 있어서 멀쩡한 어른 둘을 때릴 수가 있겠냐며 억울해했다.


나는 피고인이 억울함을 호소했기 때문에 무죄를 주장하고, 경찰에서 피고인으로부터 맞았다고 진술한 피고인의 처와 딸에 대한 진술조서를 ‘부동의’했다.

증거 부동의란 이 자료를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진술조서를 부동의하게 되면 검사는 진술자를 증인으로 신청하고, 이후 법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을 검사와 변호인, 재판장이 신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우리가 피고인의 처와 딸의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검사님은 피고인의 처와 딸을 증인으로 신청하셨다.

 그런데 그 둘은 여러 번 나오지 않았다. 피고인은 그들이 허위신고를 했기 때문에 겁을 먹고 나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증인신문과 별도로 법원에서 ‘양형조사’를 했는데, 이것은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 형량을 정할 때 참고자료가 된다. 피고인 사건의 양형조사서에는 양형조사관이 피고인의 딸과 통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법정에 가서까지 아버지를 처벌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

   

딸은 끝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피고인은 재판날 검은색 비닐봉지를 가지고 와서 재판장님 앞에서 이 안에 증거가 들어 있다며 흔들었다. 그 속에는 슬리퍼가 들어 있었는데, 피고인은 딸이 피고인의 가슴에 올라타고 슬리퍼로 얼굴을 때렸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도 법원은 기소된 내용 한도 내에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피고인이 별도로 고소해야 하는 것이었고 이 재판은 피고인이 한 행위에 대한 재판이라서 법정에서 그 내용에 대해서 되묻는 사람은 없었다.   

 

피고인의 처도 출석하지 않고 또 재판이 공전되려나 하던 찰나

피고인의 처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증인신문이 시작되었다.

피고인의 처가 말했다.

 제가 35년간 맞고 살았어요. 그런데 때린 적이 없다니 기가 막힙니다.    


피고인의 처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다.

피고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었고 딸은 미혼이며 직장에 다니면서 피고인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얼마 전 피고인의 처는 남편의 폭행을 피해 아들네 집으로 갔다.


피고인의 딸은 그래도 아버지이고 당뇨가 있어서 식사를 챙겨야 하는데 나마저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집에 남았다고 한다.

피고인의 아들은 어릴 때부터 많이 맞았고 어머니가 맞는 것을 보고 자라서 아버지와 연을 끊었으며, 결혼 이후 며느리를 데리고 집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피고인의 처는 아들과 법원에 함께 왔지만, 아들은 법원 밖에서 기다리도록 했다고 했다.


아들이 이 법정에서 저 사람을 보면,
아마 죽일 겁니다.
제가 겨우 말려서 여기 못 들어오게 했어요.   

증인신문이 진행되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본 피고인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피고인은 나에게 깍듯했고 늘 고생한다, 죄송하다, 감사한다라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가, 처가 증언할 때마다 혼잣말로 욕설을 했다.


그 욕설 순간 흥분해서 나온 욕설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배하고 소유해 온 것에 대한 분노와 경멸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욕설은 저음이고 나직하고 차분했으나 흥분이 섞인 깊은 호흡이 느껴졌고, 평소에도 했던 것 같은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재판을 마쳤고 선고기일이 정해졌다.


피고인과 함께 법정 앞에 있으니 피고인의 처가 아들에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재판을 마쳐서 나갈 것인데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묻는 내용의 통화였다.

그러다 피고인의 처는 통화 말미에 “한 번도 때린 적이 없대..”라고 했다. 순간 전화가 끊긴 것인지 피고인의 처가 “여보세요?”를 반복했다.


피고인의 처가 법정이 있는 건물에서 먼저 나갔고 피고인과 피고인의 친구는 나에게 피고인의 처가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면서 하소연을 하느라 좀 늦게 나가게 되었다.     


나와 피고인, 피고인의 친구가 법정동 앞마당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흥분한 맹수처럼 맴돌고 있는 피고인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다.    


피고인의 아들은 피고인에게 달려들어서 지팡이 용도의 등산스틱을 두 동강 냈다.


그러고는 피고인의 멱살을 잡아들어 올려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피고인이 아들의 멱살잡이에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법정동 건물로 들어갔다.

마침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정리하고 있던 법정경위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다른 경위님들도 젊은 남성이 노인의 목을 조르려 하는 모습을 보고 뛰어나왔다. 나도, 경위님들도 말리기 위해 다급하게 다가갔다.    


엄마를 한 번도 안 때렸다고? 안 때렸다고?
죽어버려, 너 같은 건 죽어버려야 해.


우리가 하지 말라고 말하며 다가갔지만

피고인의 아들은 피고인의 목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물러섰다.

그가 너무 큰 소리로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나 울면서 말하면, 목을 조르는 그 손에 힘이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고,  

  

우린 아버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 아들에게서 어린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나만 본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분명 소년의 모습이었다.    


서럽게 울며 죽어버려 죽어버려라고 말하는 그에게 피고인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성인 남자가 노인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을 법정동에서, 앞에 있는 은행에서, 근처 매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보게 되었지만 다가가던 사람도 멈칫했고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부끄러움을 알 것이고 그곳이 법원이며 바로 옆에는 검찰청이 있고 수많은 목격자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인데 어째서 그에게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지, 이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선고기일을 앞둔 어느 날.

늘 피고인과 함께 오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피고인이 사망했다고.  

  

피고인과 며칠간 연락이 되지 않아서 집에 찾아가 보니 안방에서 숨져 있었다고 한다.

피고인이 발견될 당시 피고인의 딸은 다른 방에 있었다고 한다.

피고인의 친구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피고인의 딸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에서는 별다른 범죄 혐의점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피고인의 딸은 어머니의 증인신문 이후 더 이상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주지 않았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고인은 스스로 밥을 차려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딸이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자 막막했을 것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딸의 도움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과 오빠, 엄마를 때리고 늙고 병들어서까지 있는 힘을 다 해서 가족을 때리는 아버지의 식사를 챙기며 한 집에서 살았던 그 딸의 마음은 어땠을까.     


피고인의 친구는 계속 피고인의 딸이 피고인을 폭행했거나 피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죽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피고인의 친구 외에는 없었다.    


약자의 역습이었을까..    


피고인에 대한 재판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피고인 가족의 가정폭력 사건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신고와 처벌,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그들은 서로를 증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끝이 났다.


피고인은 선고기일에 유무죄 판단을 받지 않았다.

피고인 사망을 이유로, 검사의 공소를 기각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한 때 아들은 아버지를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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