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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r 16. 2022

늑대소년

1920년 인도에서 늑대가 키운 두 명의 소녀가 발견되었다. 두 소녀는 각각 교육학자와 목사의 가정으로 옮겨졌고, 그들 가정은 소녀들을 사람답게 만들려고 무던히 애를 썼으나 소녀들은 늑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더 오래 살아남은 소녀가 9년 동안 배운 것이라고는 단어 45개와 겨우 포크를 사용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발달의 결정적 시기에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년형사사건을 국선 변호하게 되었다.

피고인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미성년 남자아이였다.     


피고인은 ‘동네 노는 형’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자신의 오토바이에서 기름이 떨어지자, 남의 오토바이에서 몰래 기름을 빼서 자신의 오토바이에 넣었다. 그 외에도 한 건이 더 있었다.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소년보호처분 전력을 보니 이미 여러 건의 절도와 폭행, 사기,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에 교통사고를 낸 전력도 있었다. 처음에는 약한 보호처분으로 선처를 받다가 나중에는 소년원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사가 일반 형사재판을 받도록 기소했다. 피고인이 더 이상 선처를 받기 어려운 시점에 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되면 이번엔 소년원이 아니라 교도소에 수감될 가능성이 컸다.     


상담을 하러 온 피고인은 키가 크고, 기록에서 느낀 이미지와 달리 인사성도 밝고 차분했다.

절도 공소사실도 인정했고 잘못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정비일을 배워서 성실하게 살고 싶다고도 했다.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피고인으로부터 형량을 줄이거나 선처를 받기 위한 자료(양형자료)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질문했다.  

    

피고인의 부모님은 미성년 시절 아이를 낳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인이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피고인의 부모님은 피고인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피고인의 부모님은 아이 둘을 더 낳았고 피고인은 막내였다.


피고인의 할머니와 피고인의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 때문에 피고인의 부모님은 자주 다투었다.

그리고 피고인이 다섯 살 때 피고인의 엄마는 아이 셋을 두고 집을 나갔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집에 잘 오지 않았다.    

 

피고인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 세 남매가 버거웠는지 동네에 방 한 칸을 구해서 미성년 아이들 세명이 살도록 했다. 할머니가 가끔 반찬을 넣어 주셨지만 아이들은 학교에 준비물을 자주 가져가지 못했다.

세 남매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없는 집에서 살며 많은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피고인은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시절을 ‘동네 노는 형’들과 삼각 김밥, 라면을 먹으며 컸다. 부모는 피고인의 끼니를 챙기지 않았지만 ‘동네 노는 형’들은 피고인에게 밥 먹자고 했다. 어려운 일도 ‘동네 노는 형’들과 상의하고 의지했다.


피고인이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 피고인을 위해 싸워준 사람도 ‘동네 노는 형들’이었다. 그 형들은 피고인의 생일에도 밤늦게까지 함께 해주었고, 돈이 생기면 피고인에게 고기를 사주거나 용돈을 주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하다가 가끔 집에 오면, 공부를 하지 않고 놀러 다닌다며 피고인을 때렸다. 자신도 공부 안 하고  학교 안 다녔으면서..

어느 날은 집에 형들과 함께 있는 피고인을 보고 형들이 보는 앞에서 몽둥이로 때리고 피고인을 발로 차고 얼굴을 밟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피고인 남매가 사는 원룸에 엄마가 찾아왔다.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하고 옷도 사주었다. 그리고 헤어지는 길에 “엄마 결혼한다.”라고 했다.


피고인은 언젠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엄마와는 영영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퍼서 이 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이후 피고인은 ‘동네 노는 형’들에게 인생을 본격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피고인은 ‘동네 노는 형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치킨집과 피자집에서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며 용돈을 벌었다. 피고인에게는 면허가 없었기 때문에 이때 무면허 운전 소년보호처분 전력이 생겼다.    


재판에는 피고인의 선도를 다짐할 어른이 필요했다.

그러나 피고인의 엄마는 이제 피고인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피고인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피고인의 아버지는 재판에 관심이 없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나와 상담하기로 한 날에 오지 않기를 반복했다.   

   

재판 전 피고인의 아버지를 겨우 만났고 나는 아버지를 피고인의 선처를 위한 ‘양형 증인’으로 신문할 계획을 말했다. 피고인의 불우한 환경과 부모로부터 보살핌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이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잘 돌보고 선도하겠다는 다짐과 의지와 관련한 신문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어쨌든 잘 됐으면 좋겠다면서 이제 피고인에게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재판 당일, 나는 예정대로 피고인의 아버지를 신문했다.

우리가 미리 나누었던 대화대로 신문을 이어나갔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피고인의 성장환경에 관한 나의 질문에 맞다고 수긍했고

신문은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피고인의 신문을 마치면서 피고인의 아버지에게

증인은 피고인이 왜 엇나갔다고 생각하나요.


라고 물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른들이 잘 돌보지 못해서이고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살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아버지가 뜻밖의 말을 했다.

처벌이 약해서죠.


나는 당황했다.

피고인의 아버지는 자신이 왜 나왔는지를 잊은 듯이 말했다.


소년원 기간은 너무 짧아요. 아주 엄하게 처벌해야지, 6개월로 고쳐집니까? 이번에도 징역 가게 되면 쫌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피고인 아버지가 예상하지 못한 말, 미리 상의하지 않은 말을 해서 나는 당황한 채 신문을 마쳤다.     

피고인의 아버지에게 의지했다가 불의타를 맞고 최후변론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피고인에게는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이런 것이 없었다.     


그는 건강한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배심원들에게 부모도 믿지 않는 피고인을 믿어 달라고 해야 했고,

아버지가 엄벌을 원하는데 선처를 구하는 변론을 해야 했다.


우리가 믿어 주어도 피고인은 또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지만 피고인이 아직은 미성숙한 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믿어 주어야 한다고 변론하면서도 내 마음과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피고인에 대한 소년부 송치 의견을 냈고 피고인을 소년부로 송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처음에 배심원들은 피고인을 싹수가 노랗다는 듯이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그 사건 재판이 끝난 3년 뒤, 내 사무실에 모르는 전화번호들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때 그 피고인의 여자 친구, 아는 형, 아는 동생 등등.


피고인이 지금 구치소에 있는데 내가 접견 와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죄명이 뭔데요?

범단이요.    


범단이란 범죄단체 줄임말이다.

범죄단체를 조직하거나 범죄단체에서 활동하면 처벌받는데, 주로 폭력조직에 가입해서 활동하면 그렇다.


“어느 조직인데요.”

“00파요..”     


나는 접견 가지 않았다.


피고인은 이제 성년이 되었고,

사람이 낳았지만

늑대가 길러주었던 소년은 늑대에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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