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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r 18. 2022

난 잃을 게 없어. - 스토킹

스토킹은 꼭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같은 성별끼리, 어른이 아이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족 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스토커들이 피해자들에게 보낸 협박문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는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였다.


과연 그럴까?     


스토킹 범죄로 구속되었던 피고인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의 학업과 생활비를 후원해주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을 후원 명목으로 모집해서 키다리 아저씨와 아빠를 자처하며 학업을 독려하고 수시로 생활을 살폈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후원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후원한다고 했다.


후원받는 학생들은 가정이 불우하고 저마다 상처가 있었다.


피고인은 후원받는 학생들의 생활을 통제하고 모두 너를 위한 것이라고 하며 가스라이팅을 했다.


그러다 친밀해지면 가정의 취약한 점이나 고민거리를 듣고 약점을 파악했으며, 주변의 친구들과 아르바이트 일자리 지인 등에게도 학생의 후원자라고 소개하며 호의를 베풀고 인간관계를 파악했다.     


나중에는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과 귀가시간을 체크하기 시작하고,  생의 사소한 핑계나 거짓말을 포착하여 그로 하여금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혼을 내는 목은 학업에 충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혼을 낸 다음 공부 열심히 하라며 노트북을 사주거나 일정 부분을 통제한 다음 책값을 주는 식으로 혼란스럽게 했다.

피해 대학생들은 자신이 범죄의 표적이 아닐까, 이게 덫이 아닐까 의심했다가도 그의 언변과 선의로 포장된 행동에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건 피해 대학생은 여자였다. 그녀는  매번 나의 피고인에게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 다시는 안 그럴게요.”"열심히 공부할게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것은 가스라이팅이고 스토킹이었다.  그의 최종 목적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피해 여대생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과  그가 원하는 건 학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에게서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피고인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후 피고인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진을 찍고 질책과 협박, 회유의 문자를 보내다

급기야는 그녀의 가족과 그녀의 친구에게도

그녀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며 숨통을 조였다.


그는 그 여대생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집에서 잠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캡처한 다음, 치 함께 잤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전송시키거나 보여주었다.


그 여대생이 공부하고 있는 커피숍에 찾아가 몰래 지켜보고 집과 가족, 지인들을 찾아가고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이해하기 어려운 분노와 배신감을 표현했다.

자신이 사준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거나 자신이 보낸 돈을 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 여대생은 단호하게도 해보고 그의 요구에 응해서 물건과 돈을 돌려주기도 해 보고 달래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썼지만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 하에 그녀가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협박이든 사랑이든 후원이든 관계가 없었다. 대화도 그랬다. 그녀의 반응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의 절규도 애원도 단호함이 담긴 메시지도 다 ‘아직 나의 영향력 안에 있다.’, ‘반응한다.’는 시그널일 뿐이었다.


그 반응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점점 수위를 높여갔다.      


그 피해자인 여대생은 용기를 내어 그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가족과 친한 친구에게도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았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돌아보며 그의 문자와 전화 등 스토킹 증거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결국 그는 구속되었고, 여러 죄명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스토킹 범죄는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할 수도 있지만, 스토킹 행위 자체가 개별적으로 다른 법을 위반한 범죄행위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성폭력범죄, 폭행, 협박, 상해, 공갈, 주거침입, 명예훼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비밀 침해죄,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다양한 죄로 함께 처벌할 수 있다.    

 

 여러 죄명으로 처벌받게 되었다.


나는 그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이었다.

그는 자기애적 망상에 빠져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나에게 알려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그 여대생에게 장학금으로 쓴 돈이 얼마인데, 억울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많은데 성인만 후원하셨요.


“저는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사업해서 돈을 벌면 대학생들을 후원하겠다고 마음먹었었어요.”


그럼 어려운 남자 대학생들은 왜 안 도와주셨나요.


“....”     


기록을 보니 후원받는 대학생의 성별이 모두 여자였다.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마음이 약해져 있는 학생들을 공략한 것이다. 그중 피고인이 최종 목적을 달성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재판에는 그의 후원을 받는다는 다른 여대생들의 탄원서가 들어왔다.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후원자라고. 피고인으로부터 탄원서를 쓰라고(돈값하라고)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 여대생은 재판을 방청하면서 피고인의 주장을 반박했고 엄벌을 탄원했다.

피고인이 편지를 보내면 2차 가해를 호소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나는 그의 변호인이기 때문에 그의 부탁으로 그녀와 합의를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합의를 거절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얻어 그가 받은 4년의 형이 너무나도 적다며 그를 더 큰 엄벌에 처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계속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피고인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피고인은 그 여대생의 행동과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고소하지 않았고 피고인이 구속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녀가 결혼한 후에도 스토킹을 계속할 사람이었다.     


스토킹 범죄는 혼자서 고민하면 해결이 쉽지 않다. 스토커는 자신이 피해자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야 상대방이 어려운 법이다.


주변에 알리고 증거를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하고 고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그 여대생이 단호하게 대처하자 맞불을 놓으며 "나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문자를 보냈었다.


그러나 정작 구속되자 피고인은 구금생활을 하루도 견디기 어려워했고 석이나 형을 줄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내 앞에서는 어떻게 4년이나 사냐고 울었다.     


     

잃을 게 없다니.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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