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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pr 16. 2022

기다림

내가 국선으로 맡은 사건의 피고인을 상담하는 시기는 사건기록이 복사되고 내가 그 기록을 모두 읽고 난 다음이다.      


최근 사무실에 직원이 코로나로 확진되고 복사가 조금 늦어지게 되었다.


재판기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공소장(피고인의 범죄 혐의 내용)만 가지고 있고 아직 수사기록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피고인을 만났다.


수사기록이 복사되면 다시 얘기하더라도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주요한 내용을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형사재판을 받는 내용은 편의점에서 점원을 때리고 난동을 부리고 이어 출동한 경찰까지 폭행해서

공무집행방해를 하였다는 것인데, 그는 사람에게 손을 댄 사실이 없고 일방적으로 맞았을 뿐이라고 했다.


너무나도 억울하다면서

대한민국 경찰이 이렇게 생사람을 잡아도 되는 것이냐고 했다.     

 

편의점 CCTV를 보면 다 나올 것인데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피해자 말만 듣고 기소했다는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는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피고인과 상담 후 일단 ‘피해자를 폭행한 사실이 없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후 수사기록이 복사되어 살펴보게 되었다.

거기엔 CCTV 캡처 사진이 있었다.     


피고인이 무협지에 나오는 사람처럼 날아다니며 물건을 휩쓸어 넘어 뜨리고 점원을 때리느라 사진에 흔들림이 있었다. 와호장룡을 보는것 같았다.


정확히 피고인의 손이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를 때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기록을 보았다.     


“했네. 했어..”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 있겠지. 진짜로 억울한 사람을.     

작가의 이전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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