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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pr 10. 2022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저자 김승섭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이 많다.

나는 주로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변론하기 때문에 빈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몇 년간 구치소 안팎에서 나의 피고인들을 보면서

형사재판을 받게 되면 ‘당뇨와 고혈압, 우울증’은 저절로 생기게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빈곤한 피고인들의 대부분이 질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당뇨와 고혈압은 기본 설정값인 것 같았다.

그리고 치과진료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 치아 상태가 심각한데도 치료받지 못해서

이가 없거나 치과질환을 앓는 사람들도 꽤 만났다.     

책 53쪽

오늘날 우리는 가난이, 또는 경제적 결핍과 사회적 폭력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혈중 코르티솔을 높이고, 그 결과 심장병,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병 발생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과학적 사실입니다. 코르티솔을 분비하는 신체기관은 신장 위에 있는 부신입니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많이 사용하면 근육세포가 커지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몸에서 일상적으로 코르티솔이 더 자주 더 많이 분비되면서 부신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것이지요.   

  

책 57쪽
당뇨병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노화와 가족력은 물론이고, 고혈압과 과체중도 원인입니다. 여러 원인들이 서로 엉켜 함께 당뇨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국선변호를 하다 보면 ‘조현병’이 있는 피고인들을 종종 만난다. 과거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사선 변호인일 때에는 조현병이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지인의 가족 중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없고, 길에서 조현병이 의심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국선변호인이 되면서는 조현병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 것이다.    

 

조현병은 남자의 경우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치매와는 다르게 청춘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조현병 환자를 나는 어째서 이렇게 가까이서 자주 만나게 되는가, 그리고 유전이나 환경적 요소가 발병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조현병은 왜 나의 피고인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많이 발병했을까.


조현병은 여러 가지 열악한 요인이 발병하게 만들었지만, 다시 그 열악한 요인들로 인해 치료가 쉽지 않고 악화되어간다. 돌봄 받지 못하고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은 정신병원과 거리, 교도소를 회전문처럼 오가기도 한다.

책 58쪽

유전적 요소인 가족력조차도 환경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데, 질병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만 고려할 때 우리가 놓치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지요.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매달 50만 원 정도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서 사는 사람은 당뇨와 고혈압을 고려한 식단을 구성해서 식사하기 어렵다. 질병을 관리하기 어렵고 건강이 악화되기도 쉽다.

질병 때문에 일을 하기 어렵고, 돈을 벌기 어려우니 돈을 필요로 하는 사고는 수시로 삶을 위협한다.


어느 날 선고가 한참인 형사법정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방청하고 있었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어느 피고인이 재판장님께

"판사님, 이 벌금은 너무 과도합니다. 정말 너무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하자

재판장님이

그러니까 형벌인 겁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죄를 지어 선처를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반복하면서 벌금을 깎아 달라고 하니

재판장님께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 피고인에게 그 말씀은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일반적으로 벌금이 모두에게 형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편이 좋은 집안의 자식이 사고를 쳐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면 부모님이 벌금을 내고 그 누구에게도 형벌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도와줄 사람이 없고 매달 50만 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서 빠듯하게 사는 사람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던 생활이 어긋나게 되고 그 돈 때문에 빚이 생기기 시작하고

약값을 지출하지 못하고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정도가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같은 상황도 누군가에게는 형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된다.



나는 일할 수 없는 사람 종종 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려면 돈 벌 곳이 얼마나 많은데 무직이냐,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돈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하느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몸도 정신도 일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을 읽고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회의 안전망이 되어 주는 그물을 짜는 분들을

만날 때면,

안도감이 느껴지고 내 삶의 주변이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나오는 아픔들은 건강한 사회로 이어지는 길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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