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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y 01. 2023

자기 자신과 거리두기

(내 마음과도 안전거리가 필요해요.)

친구나 가족등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대한 정서적 거리 두기에 관해서는 조언을 많이 한다. 거리를 두고 조금 더 자신을 살피라는.


그런데, 나는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자신감이 과도하거나 오로지 자기만이 정의인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어디서 풀 뽑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있던 내 또래 엄마들의 대화가 들렸다. 아이가 너무 소극적이라서 걱정이라는 것이다.


내가 본 그 아이는 잠수함 같았다. 깊고, 조용히 이동하는. 소극적이라기보다는 신중하고, 어떤 말도 할 수 있지만 무례하지 않기 위해 말을 가려서 하는 아이. 누구보다도 단단한 아이로 보였다.


아이를 걱정하는 그 엄마 옆 다른 엄마는 적극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서 조언하고 있었다.

 

나는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어서 조용히 풀만 뽑았다. 나의 고객들이 떠올랐다.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거나, 조금만 의심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과도한 자신감이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추진했다가 사기 등 각종 사건에 휘말려든 사람들. 만나보면 어찌나 자신감이 넘치고 긍정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적극적이고 말을 잘하는지. 예측불가의 매력이 있고 사교적이기까지 하다.


가끔 놀라서 묻는다.


선생님, 진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나는 올해 지인을 폭행하고 감금한 죄로 재판받는 피고인을 만났다. 한때 성공한 사업가로 신문에도 나왔다. 몇 년 전 그의 사업은 망했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는 지인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폭행하고, 도망가려고 하는데 붙들어 앉힌 다음 협박성 발언을 했다. 이미 그 피해자는 폭행도 당했고 나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한 터라 겁이 나서 그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았다.


이 행위를 한 피고인은 반성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음 피해자의 용서를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합의를 하든지 공탁제도를 이용하든지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피고인은 자신이 무죄라는 것이다. 문을 잠그지도 않았는데 무슨 감금이며, 서로 오해가 있어서 싸다구 몇 대 때렸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도 흥분해서 때렸으니 미안하다고 곧바로 사과해서 다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자유의사가 제압되어서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 그 행위가 우리 법이 말하는 감금이라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무조건 아니라고 했다. 때린 이후 일방적으로 사과해도 폭행한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폭행죄도 인정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높은 형량을 받을까 봐 조심스러워서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와의 합의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는 나름의 근거를 대며 이건 무조건 무죄라고 했다.



그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지 않는다면 대법원까지 가서 밝히겠다고 했다.  최후진술에서도 억울하다면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무죄를  호소했다.


그런데 그가 선고기일을 일주일 앞두고 내게 전화했다. 누가 그에게 구속될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구속될 수도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잘못을 하고도 피해자를 비난했고, 합의도 되지 않았고 동종전과가 여러 개 있어서 구속은 24 절기가 정해진 것과 같다고.


나는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되지 않는 일을 해낸, 내 피고인에게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시킨, 그 '누가' 너무 궁금했다.


구속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신 분은
 누구신지요.


역시나 '살다나온 사람'이다.


내가 예전에 그랬다가
 징역 갔잖아.


그 말만이 나의 고객을 움직였다.


뒤늦게 합의하려고 했지만 피해자는 돈도 필요 없다고 했고, 나의 고객은 구속되었다.




양을 치는 사람들은 양의 숫자를 자주 세니까 늘 잠을 잘 잘까.

나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을 많이 봐도 개복치인데.


자아가 너무 강해서 결국 자신에게도 해를 끼친 내 고객. 심약해서 걱정을 사서 하는 나. 모두 가끔 자기 자신과 안전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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