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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y 10. 2023

당근으로부터의 사색

나는 예전에 당근마* (이하 '당근'이라고 함) 진상분들과 거래한 이후 식겁해서 탈퇴한 적이 있었다.


당근에서 탈퇴한 이후 이사를 한번 했고, 근래에는 내가 소유만 하고 사용하지 않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슬며시 다시 당근에 가입했다. 탈퇴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고, 나도 더 컸기 때문에(사실은 거대한 개복치가 되었을 뿐이었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근거래를 하면서 따뜻한 이웃, 깔끔한 이웃, 좋은 이웃도 만났다.

그러나 그런 기억도 한두 명의 진상이 쓸어가 버린다.



거래하기로 약속해 놓고도 직거래 직전 잔돈이 없다고 하는 분이 있었다.  계좌이체 해주셔도 되고 제가 돈을 거슬러 드리겠다고 했으나 AI처럼 잔돈이 없다는 말만을 반복하며 '맑은 광인의 눈'으로 나를 계속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어? 아줌마네?"라고 했다. 내가 아줌마인 것은 나도 엄중히 인식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줌마가 아니길 기대하고 나왔다는 식이라서 듣기 좋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는 거래가격을 확정하고 직거래하는데도 물건값이 비싸다며 반만 주겠다고 한 다음 내가 팔에 끼고 있던 물건을 휙 빼앗았다.


돌려달라고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에이 내가 앞으로 또 살게~"라고 했다. 내가 사업자등록하고 중고물품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또 사긴 뭘 또 사나. 나는 순식간에 그 아주머니 손에 넘어간 내 물건을 다시 빼앗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어어 있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할머니 고쟁이에서 돈을 꺼내듯 주섬주섬 청바지 주머니에서 거래가격의 반에 해당하는 돈을 꺼냈다.


'팔을 잡거나 옷깃을 잡아도 폭행'

머릿속에는 내 물건을 자력으로 탈취하려다가 그 아주머니와 몸싸움을 해서 약식명령을 발령받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당근 하다가 전과 생기면 안 되지..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사이 그 아주머니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심하고 유리멘탈인 개복치에게는 많은 기회비용과 차익이 '위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중고로 살 수 있는 것을 신상으로 사고, 중고로 팔 수 있는 것을 그냥 보유하거나 중고거래로 처분하지 않는 것은 정신적으로는 더 큰 가치가 있을 수 있다.


연인이나 부부가 한번 헤어졌다가 다시 합쳐도 헤어질 때는 같은 이유로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게 당근도 그렇다.

손을 꼭 잡고 당근과 이혼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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