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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y 28. 2023

효율보다는 본질

(기본적인 일은 급하지 않아도 중요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운이나 행운은 천재지변과도 같은 것이라서 예측하기 어렵겠지만, 다른 사람의 운이 좋아질지 앞으로 잘 될 수 있을지 혹은 평온하게 살 수 있을지는 누구나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나는 피고인 수천 명을 만나면서 그 사람의 운에 관해서 느꼈던 적이 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법칙처럼 몇 가지 특징과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 있다.




어떤 여성 피고인이 다른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고, 그 형을 복역하던 중 새로운 사건으로 고소를 당해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내가 맡은 사건은 그 피고인이 징역 살고 있는 사건이 아니라 추가로 고소된 그 새로운 사건이었다. 그 피고인은 과거 무리하게 사업을 하다가 사기죄로 징역형을 받았던 것인데, 이번 사건은 예전사건처럼 중한 것은 아니었다.


그 피고인에게는 옥바라지를 하는 30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어머니가 벌려놓은 일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계속 직장생활을 했는데도 큰 빚을 지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피고인은 아들이 효자라고 내게 자랑하며, 출소하면 아들이 살고 있는 방에서 함께 살 것이라고 했다.


내가 맡은 그 피고인 사건 재판이 열리기 전에 피고인은 출소를 했고, 나에게 출소했다며 인사차 전화를 하면서 앞으로는 아들 마음고생을 시키는 일은 일절 하지 않고 아들 뒷바라지만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그 피고인이 재판 전날 나에게 전화를 해서, 지인이 지방에 있는 마사지샵을 자신에게 맡기기로 했고 자신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며 새 출발의 기회를 얻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재판 날 계약서를 쓰기로 했다면서 재판 연기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이미 계약서를 쓰기 위해 부산에 내려왔고 다음날 오전재판에 참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안됩니다. 그 계약서가 뭐든 쓰지 마세요.


나는 그녀에게 그 계약서를 쓰면 안 된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관재구설'의 끝판왕인 구속까지 되어 있었고 또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드나드는 기간인데 잘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일을 도모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형사재판을 받는 도중에 새롭게 일을 벌이거나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거나, 경솔하고 대담한 일을 하거나 그런 인연을 만들면 새로운 사건의 피고인이 되어 사건이 덕지덕지 병합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당연히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 '재판출석'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 본질적인 일을 하지 않고 더 나아질 궁리를 하며 다른 일을 하면 그 일이 잘 풀리기도 어렵지만,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는 뿌리의 붕괴까지 경험해야 할 수 있다.


그녀는 끝내 재판출석을 하지 않고 계약서를 썼고, 이후 내가 맡은 재판의 선고를 앞두고 그녀로부터 마사지샵으로 인해 '성매매알선'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수사를 받고, 민사소송까지 제기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하는 전화를 받았다.



대단한 일, 빛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이고 당연한 일들, 삶의 본질에 가까운 것들을 성실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앞으로 뿌리가 더 튼튼해질 것이고, 그 뿌리가 줄기를 잘 지탱해 줄 것이고, 잘 자란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서 단단한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도 잘 견딜 것이다. 그게 그 사람의 운이다.


우리의 운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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