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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Mar 30. 2024

달래장

지방에 계신 친정 엄마가 여동생 집에 올라오셨다.

며칠만 머물다 가신다고 해서 하루쯤은 엄마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마침 재판도 없고 상담일정이 없는 날이 생겨서 평일에 여동생 집으로 갔다.


엄마는 5일장이 서는 성남의 모란시장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어제 마침 모란시장 장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장구경을 하고

장에서 빨간 매운 어묵도 먹고 양념게장, 낙지젓갈, 달래를 샀다.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은 쑥을  팔고 계셨다.


장에서 떨어진 길바닥에 앉아계셨는데, 어제는 비도 내리고 날도 추워서 그 할머니를 지나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쑥도 사게 되었다.



검은 비닐봉지 달랑달랑 거리며 여동생집에 도착했다.

나는 뜨뜻한 바닥에 드러누워 엄마와 수다를 떨면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보고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시간이 돈이잖아. 얼른 가라."


이것은 엄마가 드라마에서 본 변호사와 나를 잠시 혼동하셨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매달 일정금액을 받는 국선전담변호사이고, 시간이 있더라도 돈을 받고 하는 소송이나 자문을 일체 할 수 없다.


그 이전 사선변호인 시절에도 월급을  받았었지 개업변호사이거나 아니면 대형로펌처럼 타임차지(time charge, 업무 소요 시간에 따라 수수료를 산정하는 방식)로 일한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 내 시간은 그냥 시간인데?"


엄마는 잠시 뭔 말인가 생각하시더니 아.. 하셨다. 그러고는 비닐봉지 안에 산더미처럼 들어있는 흙 묻은 노지 달래들을 나에게 주면서 다듬으라고 하셨다. 양이 너무 많고 질서 없이 엉켜 있는 달래들을 하나하나 집어서 다듬을 생각을 하니 아찔해서 이걸 어떻게 다 다듬냐고 했다.


"니한테는 시간이 그냥 시간이라며."

엄마가 드러누워 있는 것보다 낫다며 달래를 다듬으라고 해서 나는 콩쥐처럼 주섬주섬 일했다.


달래를 다듬고 이제 쉬려고 했는데 엄마가 나에게 달래장 만드는 것을 보라고 했다.

내가 싱크대 앞 엄마 옆에 서니 엄마가 쫑쫑 썰어놓은 달래에 간장을 부으면서 똑똑히 보라고 했다.


엄마가 이제는 건강이 좋지 않고 어찌 될지 모르니 나중에  엄마가 없을 때는 네가 만들어 먹어야 한다며.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엄마는 매일 우셨었다.

내가 친정에 내려가서 엄마 옆에서 잘 때 엄마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주시면서 흐느끼듯 말하셨다.

"아빠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갔는지  알면 따라가서 데려오고 싶다."


항상 툭 치면 울듯이 지내던 엄마가 이제는 장구경도 하고 싶다고 하시고

나랑 팔짱 끼고 달래도 사고 그러니까 행복했다.



나한테 시간이 돈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만약 내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어

시간을 더 확보할수록 더 큰돈을 벌 수 있었더라면

내가 주저함이 없이 삶의 정수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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