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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pr 17. 2024

화양연화(세움)

내가 본 전시회 중 가장 감동적인 전시회

선고일에 법정구속될 것이 예견되는 여자 피고인이 있었다. 그녀는 미혼모로 부모님이 반대하는 출산을 했다. 그녀는 가족들과 갈등을 겪다가 관계를 단절했다.


그 여자 피고인은 자신의 성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짓고 홀로 키웠다. 억척같이 일하면서 아이를 키워냈지만 외롭고 힘든 생활이 지속되자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빠졌다.  

   

불구속으로 재판받고 있지만 선고일이 되면 그동안 다른 사건들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녀도 구속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녀의 딸은 초등학생인데 학교를 일찍 마친 날에는 엄마의 재판에 따라왔다. 검사님이 엄마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지은 죄를 알고 있었고, 엄마가 법원에 갔다가 갑자기 사라질까 봐 불안해서 엄마의 만류에도 재판에 따라왔다.    

 

그녀는 나에게 진지하게 상의했다. 주변에 자신이 수감되면 아이를 부탁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피고인의 딸은 혼자서 살면서 엄마를 기다리고 싶다며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미성년 자녀를 두고 선고날에 법정구속되는 한부모 가정의 부모인 피고인을 여러 번 보았다. 그때마다 그 아이들이 부모가 구속되었다는 것을 안 부모 형제나 지인들을 통해 아이가 보호되기까지는 방치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피고인과 그 가족들은 주변에 피고인이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고 행정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피고인도 구속되면 초등학생 아이가 혼자 밤을 보내고, 스스로 세탁도 하고 아침엔 물병을 가방에 넣어 등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이가 혼자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용자 자녀를 돕는 단체 '세움'에 연락했다. 세움의 이경림 대표님께서 여러 가지 조언을 주셔서 구청 복지과에 연락했다.


구청에 연락하니 복지담당 공무원이 피고인 거주 구에는 보호시설이 없어서 다른 구 보호시설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하였고 학업의 단절이 없도록 등교나 전학을 위한 준비까지 꼼꼼히 챙기셨다.


복지담당 공무원은 선고기일 법원에서 피고인이 구속될 경우 아이를 하루라도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법원으로 오겠다고 하셨다.


나는 함께 고민해 주고 세심한 것까지 챙겨주시는 복지 공무원에게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세움에는 보호시설이나 쉼터가 아직 없어서 직접 보호는 하지 못하지만 세움은 위기 수용자 자녀들에 대한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비롯하여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전방위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 없이 오로지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세움은 다른 복지, 사회단체들과 달리 적극적인 후원을 위한 활동을 하기 어렵다.


수용자의 자녀, 가해자의 자녀를 돕는다는 인식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 자녀를 돕지 않고 수용자의 자녀를 돕는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뭐 하러 그런 사람 가정을 돕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잘못된 부모의 행동은 아이가 부모를 양육한 결과도 아니다.


수용자 자녀들은 부모가 수감된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힘들기 때문에 주변에서 아이가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 수용자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에게도 가해자인 경우가 다. 아이들도 피해자이지만 연좌제처럼 수용자 자녀라는 이유로 함께 비난받거나 편견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세움에서는 빛나기보다는 비난받기 일쑤인 일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낮은 곳에서 돕는다.

      

세움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기고 반듯한 성인이 된 아이들은 위기 수용자 자녀들의 멘토로 활동하며 얼마 전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명은 '화양연화'이다.

[화양연화-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이르는 말]

대학에 갓 입학한 아이도 있고 군대를 다녀와 대학 졸업반이 된 아이도 있었다.     

이 아이들 10명이 직접 그린 그림, 직접 찍은 사진과 직접 쓴 글로 전시회를 열었다.


나는 세움의 이경림 대표님 초대로 전시회에 갔다.


한때 수용자의 자녀였지만 훌륭한 작가로 성장한 김민수 작가님이 도슨트로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이 전시회에 션 님과 신애라 님도 다녀가셨다. 화려한 전시회는 아니었지만 내가 본 전시회 중 가장 감동적이고 벅찬 전시회였다.    

                      




내가 예전에 노숙인 무료급식 봉사를 다닐 때, 동네에 노숙인들이 배식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것에 불만을 가진 어떤 사람이 나를 비롯한 봉사자들에게 "사지 멀쩡한데 일 안 하는 것들 밥 준다."라고 하거나 "여기에 수배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 중 오늘 생일인 사람이 있는지 외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생일이신 분은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항상 선두에 세워 먼저 배식했고, 축하한다는 말을 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들이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어려운 사람을 동시에 도울 수는 없고 각자가 인연 있는 도움을 주는 것이다.


돕는 것도 인연이 있어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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