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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08. 2024

원장님도 ADHD가 아니신지요.

ADHD로 처음 치료받았던 정신과의 원장님은 기분변화가 심했다.


어느 날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보셨다. 계속 모니터를 보시면서 마우스로 클릭하시는 것이, 어쩌면 오늘은 너무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온라인으로 폭풍쇼핑을 하면서 진료하고 계신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떤 날은 나를 위로하고, 어떤 날은 나를 혼내셨다. 그리고 어떤 날은 뜬금없이 퀴즈를 냈고, 어떤 날은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소설을 아느냐며 그 소설의 결말을 묻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원장님도 나와 같은 약을 먹는데 용량이 나보다 더 세다는 고백을 하시기도 하셨다.


다만 그 고백은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아들도 약을 먹는데, 아들과 일본여행을 갔다가 지하철을 타려던 찰나 아들이 “아빠 빨리 좀 와!” 라며 짜증스럽게 말해서 일본에서 다투고 혼자 귀국하려다 참았으며 아들은 친구가 너무 많아서 재수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끝도 없는 산만한 얘기 끝에

     

공중보건의 시절 수원 광교호수공원에서 여자친구와 오리배를 탄 이야기, 그 여자친구는 현재 사모님은 아니라는 이야기..

뭐지? 꼭 나를 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원장님은 상담 중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 끝은 늘 접신했다가 정신 차린 사람처럼 머리를 살짝 부르르 흔들며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고 있는 거지.”

라고 하며 끝났다.

     

어떤 날은 ADHD증상에 대하여 진지하고 전문적인 조언을 하다가, 달리기가 좋다는 얘기를 하셨고 원장님이 과거 암에 걸렸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잘 극복하고 완치한 얘기를 하셨다.


내가 감동받아 몰입해서 듣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셔서 책상 옆으로 나오시더니 준비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하시며 스스로 만드신 준비운동을 보여주셨다. 그것은 국민체조에서 본 허리 돌리기와 남의 이목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직관적인 스트레칭이었다. 


책상 앞에 앉으신 후에도 원장님은 주말에 어느 코스로 뛰는지, 그 코스 끝에는 친구집이 있으며 코스 내 공중화장실이 세 군데 있고 자신은 어느 지점에서 화장실에 가고 어느 지점 벤치에서 삶은 계란과 사과를 먹는지에 대해서 얘기하셨다.  

네? 화장실이요?

그리고 예민한 날도 많았는데, 그런 때는 말도 신경질적으로 하시고 눈을 잘 맞추지 않았다. 


그 병원에 오래 다니면서 좋은 날 안 좋은 날이 반복되면서 나는 병원에 들어 서면처음 마주치는 간호사에게 “오늘 원장님 기분은 괜찮으세요?”라고 묻게 되었다. 


그런 날이 많아지면서 어느 날은

‘내가 내정신 때문에 병원에 와서 왜 원장님 정신을 신경 써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원장님에게는 미워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산만함과 충동성 때문에 생긴 매력인데, 지나치게 진솔하셔서 어느 날은 자신에게 모범생 기질이 있고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강박이 생겼는데 이것은 성공한 사람에게 필요한 ‘예쁜 강박’이라고 하시다가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신 듯 혼잣말로

‘내가 그래서 암이 생겼었나..’

라고 하셨다.

   

그분은 나름대로 ADHD치료분야에 입소문이 난 ‘명의’였는데, 그분이 명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24시간 365일 ADHD(자기 자신)와 함께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이 ADHD라서 더욱더 ADHD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었고, 원장님 자신에 대한 약 처방과 임상의 결과로 환자들에게 최상의 조언과 치료를 해주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이후 나는 병원을 바꾸었는데, 그것은 이 원장님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 병원의 전문적인 심리상담사로부터 상담치료도 받고 싶었는데 워낙 ADHD 치료를 잘한다는 입소문이 나서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상담치료 자리가 있었던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 만나게 된 원장님은 후일 ‘정신과의 양성고객이 되다’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그 원장님과 치료받는 동안 나는 의사의 권위 앞에 놓인 객체로서의 환자가 아니라, 약간 환우모임에서 대화하는 느낌이었고 원장님이 마라톤을 할 때 함께 달려주시는 페이스메이커 같아서 꾸준히 성실하게 진료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치료 효과가 있어서 지금도 이원장님을 ‘명의’라고 생각한다.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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