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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13. 2024

앞이 막히든 뒤가 막히든 나는 정신과 간다.

예전에 같은 사무실 동료 변호사님이 내 방을 찾아와 상의할 것이 있다고 했다. 그분은 경력법관을 지원한 상태였다.


그분은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데, 이것이 법관이 되는 데에 장애가 될까 봐 걱정이라는 것이다. 정신과에 왜 갔던 것인지 묻자 온 가족이 차를 함께 타고 가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나서 가족 모두 다친 일이 있었는데 그 트라우마로 공황과 우울, 불면에 시달렸었다고 한다.


그는 일에 지장을 줄까 봐 정신과에 가서 항우울제와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약을 타서 일상의 평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사고의 충격으로 업무상 실수를 하거나 더 나쁜 영향이 생기지는 않을 수 있었다.


얼마나 건강한 진료이력인가. 나는 그에게 면접 시 정신과 진료이력에 대해서 묻거든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면 오히려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체력 못지않게 멘탈관리까지 하는 건전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국 법관이 되었다. 정신과 진료이력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들도 필요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 기저귀 차고 쫓아다니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아들은 그 여자 아이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아들과 그 여자아이를 놀게 해 주려고 그 아이 엄마의 번호를 땄다.


극진한 플러팅 끝에 나는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서 그 여자 아이 엄마와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는 정신과 전문의였다.


나는 변호사라고 하니 갑자기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소송과 상간녀 소송을 한 이야기를 했다.

네? 남편이 바람의 아들이라고요?

그녀는 남편과 상간녀를 조지기 위해 외도에 특화된 다음 카페에 가입했던 썰을 풀었다.


그 카페에는 배우자의 외도를 수차례 적발한 증거수집계의 도사들, 재야의 고수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증거수집 방법을 익혀 실행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외도 증거 잡는 데에는 도사

남편 역시 의사였고 시부모님도 의사였으며 시댁은 부유했는데, 아이 엄마는 그에 비해 형편이 좋지 않아 시어머니의 갑질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증거 잡아서 이혼하고 상간녀소송도 하고 아이를 끼고 있으니 상황이 반전되었다고 한다. 남편과 시댁에서 궁중예법에 따라 지극히 환궁을 청하여 다시 혼인신고하고 예전보다 더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다른 정신과에서 약물과 상담치료를 받았으며, 지금은 마음의 뿌리가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도 배우자의 외도를 알았을 때는 정신적으로 힘든 법이다. 이때는 상황을 바꿀 수는 없고 멘탈을 관리해 주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정신적 어려움(산만, 충동)을 두서없이 토로했고 그녀로부터 좋은 정신과를 추천받았다. 우리는 첫 만남에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고 1톤짜리 무게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은 뒤 급격히 친해졌고 아들은 그 덕분에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와 초등학교 때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까지 되었다.



한때 나는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된 사람들의 퇴원청구를 심사하는 정신건강심사위원회 위원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위원회에는 변호사인 나를 비롯해서 정신병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들, 정신건강복지 실무자들, 국립정신건강센터 의사가 위원으로 있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과 교류하는 일이 많았다. 그 위원회 위원 중 큰 정신병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 계셨는데 자신도 치료받는다고 하셨다. 감정표현의 문제라고 하신 것 같다. 아까도 차에서 혼잣말을 하면서 연습했다며..


내가 정신과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 데에는 이처럼 정신과를 다니며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삶의 질이 더 높아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이력은 민감한 개인정보에 해당하기 때문에 본인의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이 열람할 수 없다. 다만, 법관이나 검사 외 일부 직역에서는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서 조회할 수는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 사기업이나 직장에서 정신과 이력을 조회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정신과 기록이 앞길을 막는다고 치자. 그럼 좀 돌아가면 되지.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것은 정신, 영혼,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나의 것을 보살피고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앞길을 막는다면 그 길은 내 길이 아니거나 돌아가면 된다.

하.. 돌아가자.

살다 보면 앞길을 막는 일이 정말 많은데, 어떤 경우들이 그런지 떠올려본다면 그중 정신과 진료이력은 가장 건강하고 건전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정신과 진료 이력이 내 앞을 막든 뒤를 막든 내가 필요하면 앞으로도 갈 것이다.

             비키거라. 정신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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