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편안하고, 뭔가 내 인생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국이 있어.
나한테는 그게 아욱국, 근대국, 배추된장국이야.
어떤 소설가는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된장을 차처럼 타서 뜨끈하게 마신대.
나도 가끔 된장국을 커피처럼 차처럼 마시고 싶은 때가 있어. 그게 들어가면 평온함이 느껴지고 별 것 아닌데도 내가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들 것 같아.
오늘은 아욱국과 배추된장국을 발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게.
'가을 아욱은 사위만 준다', '가을 아욱국은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는 인권감수성 떨어지는 속담도 있어. 가을 아욱이 그렇게 맛있대.
네? 맛있어서 며느리는 안 준다고요?
아욱에는 뮤신이라는 진액이 있고 섬유질이 거칠어서, 국을 끓이기 전에 두 가지 작업을 해야 해.
하나는 섬유질 제거를 위해 줄기 끝을 똑 따서 주욱 벗겨내는 거야. 그러면 대강 가장 거친 섬유질 부분이 벗겨져. 거친 줄기 부분은 자르고 아욱은 가급적 잎과 보드라운 잔 줄기 위주로 사용해.
또 하나는 풋내 제거를 위해 아욱을 바락바락 씻는 것이야. 아욱을 그냥 끓이면 풋내가 나고 진액 때문에 미끌거리는 맛이 날 수 있어서 찬물에 치대는 거야. 초록물이 나오는 것을 서너 번 반복하면 쌩쌩하던 아욱이 기가 확 죽어 있어.
얼마나 문지르냐면 '내가 이렇게까지 문질러도 되나?' 싶을 만큼 하면 돼. 어차피 끓일 거니까 아욱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꼭 문질러야 하나? 그건 아니야. 뮤신이라는 것이 몸에 좋은 성분이기 때문에 그냥 안 치대고 요리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냥 미친 사람처럼 치대. 그럼 스트레스도 풀려.
① 물 1L에 멸치 육수를 내(표고, 건다시마, 멸치로 육수 내도 좋고 코인육수를 사용해도 좋아).
② 멸치 육수가 끓으면 간 마늘 반숟갈 넣고 된장 세 숟갈 풀어.
③ 된장이 바르르 끓으면 아욱을 넣어.
④ 아욱이 흐물흐물해지면 보리새우(건새우로 대체가능) 세 숟갈 넣고 화르르 한번 더 끓이고 끄면 돼.
☞ 아욱을 많이 끓이면 목에 호로록 부드럽게 넘어가고, 좀 일찍 불을 끄면 나름 아욱맛이 느껴지는 재미도 있기 때문에 끓이는 시간에 넘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아욱국은 좀 심심하게 끓이는 게 좋아서, 된장을 꼭 1L에 세 숟갈을 넣지는 말고 네가 두 숟갈을 넣어보고 국물을 떠먹어봐. 나는 좀 짜게 먹는 스타일이니까 네 스타일대로 간을 조절하면 돼. 마늘도 아욱의 향을 더 느끼고 싶으면 안 넣어도 돼.
아욱국에 양파를 넣고 끓이면 멸치의 비린맛을 잡아주고 단맛이 나서 좋아. 두부를 넣어도 영양면에서 좋고 감자를 반달 썰기 해서 넣어도 좋아. 감자는 은근히 미역국이랑 아욱국하고 어울린다? 홍고추랑 대파 총총 썰어 넣어도 맛있지.
그렇지만 나는 아욱국은 아욱의 맛을 최대한 느끼고 싶어서 아욱이랑 보리새우만 넣었어.
★ 예상질문: 언니는 왜 계량이 정확하지 않아?
☞ 답변
아욱국과 더불어 이 배추된장국을 먹으면 내가 안전한 곳에 도달했다는 느낌, 편안함에 닿았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더 힘낼 수 있을 것 같고.
요리법은 아욱보다 훨씬 간단하지.
물 1L(배추 양에 따라 조절해)에 멸치 육수 내고(코인 육수로 대체 가능), 물이 끓으면 된장 세 숟갈 넣고 다시 된장이 바르르 끓으면 썰어서 씻어놓은 배추 붓고 배추가 겸손해질 때까지 푸욱 익혀. 그럼 끝이야.
아욱국을 먹으면서 한 드라마가 생각났어.
내가 좋아했던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장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이제
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언니가 힘들 때
아욱국처럼 평온함을 주고 위로가 되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