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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Oct 26. 2024

삶의 중상자들, 그들의 응급실 - 고시원

나는 최근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가족 중에서도 내 현재 직장 동료 중에서도 F는 없다는 사실.

변호사는 아무래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필요하고, 이런 면이 의뢰인들에게도 좋다.


나는 오지랖이 너무 넓어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그 유명한 INFP다.   

노상에서 푸성귀를 판매하는 노인들을 쳐다보지 않고 직진을 해도 눈이 귀 위에 달렸는지 뒤통수에 달렸는지 다 보이고

고시원을 보면 인생 실패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삶의 중상자들이 들어가는 응급실처럼 느껴지는 것.

     

내가 이렇게 되도록 자란 것은 아니다. 나는 3남매 중 맏이인데 내 동생들은 나와 전혀 다르다.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 동생들은 

이성적인 것들..    

 

고시원에 대한 기억은 여럿 있다.     

나는 고시생 시절 잠시 고시원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의 고시원이 식사도 제공했다.


공부하고 있다 보면 점심때와 저녁때 벨이 울린다. 그러면 전 층에 있는 고시생들 중 식사를 할 고시생들은 식당으로 모인다.

나는 그때 벨이 울리면 바로 의자를 박차고 자동으로 식당에 향하는 내가 ‘파블로프의 개’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집중력이 남달리 없었고 지나치게 산만해서 당시에도 도저히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아무 관심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생 시절 연수원 안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가 내 영혼이 나비처럼 도서관을 날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는 공부할 수 없었다.     


사법연수원 기숙사에는 2인 1실을 사용했는데, 

공부하는 방과 침실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나는 같은 방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밤에는 또 각성이 심해서 그 친구가 없이 혼자 자는 오피스텔 독립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낮에 나만 혼자 있는 고시원이었다. 밤에는 사법연수원 기숙사에서 자고, 낮에는 수업이 없을 때 도서관이나 독서실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인 고시원에서 공부했다.     


그 고시원에는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어떤 남자는 중년으로 보였는데, 젊은 여자가 추리닝을 입고 고시원에 있으니 안타까웠는지 주방에서 만나면 살갑게 말을 걸었다.

    

당시 고시원에는 공용주방이 있었는데,한 번은 라면을 끓여서 혼자 먹고 있었다.     

어떤 중년 남성이 나와 같은 테이블(하나밖에 없음)에 앉아서 자기 라면을 먹다가 묻지도 않는 인생 얘기를 했다.    


왜 고시원에 와 있는지, 지금까지 고시원에 있을 정도로 힘들게 살지는 않았고 이것은 찰나의 상황인 점과 현재 자신이 보험설계사로서 잘 나가고 있으며 곧 고시원에서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어필했다.     


그는 정말 신사였다. 나에게 왜 고시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힘내라며 포스트잇으로 601호라고 붙여놓은 김치통의 김치를 먹어도 좋다고 말했다. 돈 주고 산 김치는 아니고 전라도에서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김치인데, 천천히 묵어서 깊은 맛이 있는 김치라고.     


평화롭게 고시원에서 공부하던 중(육체만 공부하고 정신은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밤 10시가 넘어서 연수원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나가던 참이었다. 겨울이었고 날이 추웠다.

     

그때 고시원 앞에서는 보통 사람보다 키가 작은 나만큼 키가 작은 중년 남성과 그보다 더 키가 작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고시원 생활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것을 들고 들어오는 것은 사회성이 없는 행위라고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이불과 짐들.     


고시원 원장은 그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방 한 칸에 이 짐과 네 사람이 다 들어갈 수 없고 방을 나누어야 한다는 취지 같았다.     


실제로 내가 그 고시원에 있어보니 그 고시원은 딱 한 사람이 자기에도 서러운 곳이었다.     

저 가족이 방 두 칸을 차지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다면 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이 겨울에 고시원 앞에 서 있지 않겠지.     


그날 부동산인도 강제집행을 당했거나 그에 준하는 사정이 있었겠지.

    

고시원 앞에 아내와 아이들을 세워놓고 이불과 함께 서 있는 그 중년 남성이 멋있다고 느꼈다.     


인생에 어떤 실패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아이와 아내와 함께 고시원 앞에 있었다. 아이들이 추우니 들어가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최소한

가장의 자격이 있고 아빠의 자격이 있고 남편의 자격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의  아이들이  언젠가

 아빠가  저런 모습으로 가족들을  지키기에는   아빠도  너무  젊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아이들이 잘 자라고 행운이 있기를 소망했다.

    

고시원 원장은 소음에 예민할 것으로 생각되는 고객인 사법연수생을 무척 신경 썼다.     

나를 쳐다보면서 이 고시원은 연수생들이 많아서 조용해야 하고 어쩌고 말이 많았다.     

나는 당시에도 ADHD에 오지랖이 코끼리 귀처럼 펄럭이는 사람이라서 원장님의 결정에 간섭했다.     


“원장님, 지금 밖이 추운데 이것저것 따지시는 것은 
내일 해도 되지 않아요? 애들이 지금 떨고 있잖아요.”     

그 사이에 그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비 ADHD로 추정되는 다른 연수생이 나왔다.

     

“원장님, 오늘은 그냥 들여보내 주시지요? 
지금 너무 늦어서 애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고시원 원장님은 그러겠다고 했고 우린 고시원을 나왔다.     

나는 다시 그 고시원에 가서 잠시 공부했지만     

그 가족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고시원은 삶의 중상자들이 탈출의 희망을 꿈꾸는 곳이다.     


나는 관 속 같은 고시원에서 뚜껑을 열고 다시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보았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피고인의 주소지가 고시원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옛날 생각도 나고 

피고인이 그 고시원에서 희망을 가지고 언젠가 조금 더 나은 환경으로 탈출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고

궁금해서 묻는다.     


요즘은 공용 주방에서 밥통에 밥 무료로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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