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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Oct 22. 2024

직업병, 취미병

다들 직업적인 습관이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유퀴즈를 보다 보니 교도관이 나와서 자신은 자꾸 사람의 숫자를 세는 직업병이 있다고 했다.

교도관은 도주 혹은 탈옥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어느 장소에 가든 자기도 모르게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이다.


나는 사선 변호사일 때부터 형사사건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 국선전담변호사가 된 이후 9년간은 오로지 형사사건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목격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 책을 볼 때 자꾸 죄명이 떠오른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동화책을 많이 읽어주었는데, 흥부와 놀부를 읽으면서는 놀부 아내가 흥부의 뺨을 주걱으로 때리는 장면에서 '특수상해죄..',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마지막 장면에서 왕자가 일면식도 없는 공주가 의식 없이 있는 것을 보고 키스하는데 '준강제추행죄'가 떠올랐고 백설공주 새엄마는 아동복지법위반에 살인미수가 떠올랐다.


헨델과 그레텔에서는 주인공인 촉법소년 남매가 마녀를 살해하는데, 너무 끔찍하고 죄의식도 없고 죄질이 좋지 않아서 소년법  장기 몇 년 단기 몇 년이 떠올랐다.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들은 하나같이 주인공들이 죄의식도 없이 가만히 있는 거인이나 마녀를 선제공격하고 폭력적인 행위들을 했다.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과연 전래동화와 명작동화를 꼭 읽혀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나중에는 좀 긍정적인 내용의 창작 동화를 찾아서 읽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직업병이라고는 인식하지 못하였는데.


요즘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초대사율이 떨어져서 그러나 괜히 살이 더 찌는 것 같고 해서 비가 오지 않으면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40분이 걸리는데, 걸어가면서 각종 명언과 인생 조언, 철학적인 내용의 유튜브를 들었다. 그런 것을 듣다 보니 내가 확실히 잘못 살고 있는 것 같고 걷는 게 힘도 안 나서 가요를 듣기로 했다.


최신가요부터 트로트까지 알고리즘에 따라서 그냥 계속 들으면서 걸었다.


그런데. 아름다운 목소리의 발라드와 절절한 음악 속에서 가사가 들려왔다.


헤어졌는데 왜 집 앞에서 무작정 무한정 기다리지?

이별했는데 왜 자꾸 전화하지?


그냥 걸긴 뭘 그냥 걸어. 싫다는데.

안 만나주는데 왜 자꾸 찾아가고 이름을 부르지?

그리고 며칠만 사귀자고 조르는 건 뭐지.


심지어 이별한 연인이 안행복하거나 덜 행복했으면 좋다거나

다른 사람 만나도 평생 날 잊지 말라고 하거나

제발 돌아와 달라며 전화하고 찾아가고 주변 사람에게 알아보고..


스토킹처벌법위반죄

어떤 땐 '카스바의 연인'이라는 노래가 나왔다. 무척 위험하게 느껴졌다.

가사는 대강 이렇다.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환기가 잘 되지 않은 술집에서 일면식 없는 남자와 사랑을 하고 낯선 남자 사람의 가슴에 쓰러져..


내가 변론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나의 피고인은 콜라텍에서 슬픔이 가득한 여인을 만나 그날 밤을 함께 보내고 그녀가 잠들어 있을 때

그녀의 금팔찌와 반지, 지갑 속 현금을 훔쳐서 여관을 나와서 형사처벌을 받았다.


사람들마다 관심이 있는 분야나 취미가 다를 텐데 나는 '민화 그리기'가 취미이다.


요즘은 잉어를 그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물고기 그림을 보면 유심히 본다.


그런데 오늘. 나는 아주 큰 잉어를 마주하게 되었다.

구속 피고인 접견을 갔는데 피고인이 가슴을 풀어헤치듯 수용복 단추를 열어놓았는데 그 사이로 목부터 이어지는 비늘과 꼬리 같은 것이 보였다. 거대한 잉어였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피고인의 목과 가슴 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누가 그렸을까, 선을 되게 잘 땄다.. 색은 파란색일까 빨간색일까..


피고인은 불량배 앞에서 몸을 사리는 여성처럼 나를 경계하듯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왜 남의 몸을 흝어보냐는 식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문신한 것을 철들고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왠지 질문하면 맞을 것 같은 그런 질문.


그러자 피고인이 말했다.

"철들기 전부터 후회했어요.
다들 그럴걸요?"

피고인이 말하기를 자신에게는 6세 딸이 있는데, 키즈카페에 가면 다른 부모들과 아이들이 자꾸 쳐다보고

구속 전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어떤 어린이가 다가와서 피고인 팔의 잉어를 손가락으로 문질문질 하더니 "이거 안 지워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피고인은 너무 후회되고 쪽팔린다고 했다.


온몸에 문신을 하면 매 순간 자기 인생이 싼마이가 아님을 입증하면서 살아야 된다며.


문신을 한 피고인들이 너무 많다. 앞으로 문신을 한 피고인과 상담할 때에는 피고인들이 눈추행으로 느끼지 않도록 매너를 지켜 눈만 보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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