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직원은 나와 함께 식사를 한 지 딱 일주일째가 되는 식목일 밤에 만취 상태의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즉사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자기 위해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중앙선을 넘어와 인도 방향으로 돌진하는 차량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공무원은 60살까지 할 수 있잖아요!”라며 환하게 웃던 그녀가 자꾸 떠올랐다.
나는 변호사가 아니라 직장동료이자 그녀의 친구로서,
수사하는 곳에는 구속수사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그 피고인을 재판하는 재판부에는 엄벌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60세 이후의 삶을 계획하며 회사를 나갔다가 일주일도 다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난
그녀가 너무 가여웠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나는 음주운전 행위를 싫어한다.
이런 내가 국선으로 가장 많이 변론한 형사사건은 음주운전 사건이다.
국선변호인은 사건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 내 감정 내 가치관 그대로 피고인들을 대했다면
나를 만나는 음주운전 피고인들은 검사보다 나를 더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되겠나.
누군가를 변론하는 것은 내가 일로서 하는 것이고 변호사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내가 특정한 가치관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누구를 응대하는 일이 아니다.
살인사건 피해자의 남편이나 성범죄 피해자를 법정에서 신문할 때는 미안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자식을 잃은 유족들이 법정에서 절규할 때는 눈물을 참느라 눈을 수십 번도 더 깜빡거렸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을 법정에서 내색할 순 없다.
누구나 피고인이 될 수 있다.
전과가 많은 사람만 형사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다.
전문대학 미용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피부관리실이나 스포츠마사지 업소 차렸더니 시각장애인도 아닌데 안마했다고 의료법 위반죄로 오는 여성들,
학부형 엄마들끼리 커피숍에 모여 누구 험담했다가 고소당해서 명예훼손죄,
배고파 소시지 하나 훔쳐서 절도죄,
아파트 쓰레기장 옆에 세워둔 킥보드를 버린 줄 알고 가져갔다가 절도죄로 기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을 떼서 다른 곳에 옮겼다가 재물손괴죄,
노래방에서 노래 한곡 하시라고 가볍게 손목을 잡았다가 폭행죄,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내 아이를 거지라고 놀리는 동네 아이에게 삿대질했다가 폭행죄,
미국에서 국내로 이사 오면서 짐 안에 있던 엽총을 국내에 오자마자 경찰서에 자진 신고하러 갔더니 허가받지 않고 총을 들여왔다고 총포 관련법 위반으로 처벌,
대출에 필요하다며 통장과 체크카드 보내라고 해서 보냈더니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
아르바이트하다가 보이스피싱으로 구속,
이웃 주민들끼리 다투다가 모욕죄,
유턴 회전반경 크게 했다가 놀란 오토바이가 쓰러졌는데(비접촉) 그 사실을 모르고 가던 길 쭉 갔다가 도주차량으로 기소된 사례 등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다. 저자: 정혜진
나에게 오는 많은 피고인들이
법에 무지하지만 평범한 사람
사건 당시 경솔하긴 했지만 평범한 사람
비난받을만한 행동은 했지만 일반 사람들도 고소만 안 당했을 뿐인 사건(남의 험담 명예훼손)을 저지른 평범한 사람
교통사고는 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또,
중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선량하게 살아가는 힘든 서민의 가족인 사람.
중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청렴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돌아보며 사는 성실한 공무원의 가족인 사람,
중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의인이거나 그의 가족인 사람도 온다.
어차피 모든 사건은
과실이든 고의든 잘못이 있는 것이고 죄지어서 오는 것인데 변호사가 그 경중을 따져 대하고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흉악범, 파렴치한 사건을 보면
어떤 땐 속으로 ‘참 양심도 없네’하는 생각이 들고
피해자를 보면 어떤 땐 피고인이 정말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말을 듣기 싫을 때도 있고
반성이라곤 없는 태도에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엔 구속 피고인을 접견했는데
그는 이혼까지 한 전처를 상습적으로 구타하다가 구속된 사람이었다.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죠.”라고 했다.
순간 표정관리가 안되어서 정색했다.
“그럼 선생님이 맞을 짓을 하면 누가 때리죠?” 라는 말을 하고 나도 당황했다.
그렇지만
변호인이 부인하는 피고인을 자백시켜 정의를 세우고
검사처럼 조사하거나 추궁하고
판사처럼 심판하려 들면 될까?
그러면
검사나 판사가 아무리 제대로 수사하고 재판해도
자신이 제대로 된 변론을 받지 못한 사법피해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합당한 처벌을 한 사건도 한 개인에게는 승복할 수 없는 사건이 된다.
또, 국가기관(검사)이 상대방인 싸움에서 개인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수사와 공소유지를 하는 검사에 비해 피고인은 전투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변호인이 필요한 것이다.
가끔 재판을 마치고 법정 복도로 나오면
피해자가 뒤따라 나와서 나에게 소리칠 때가 있다.
주로 어떻게 저런 놈을 변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어굴하다 어굴해
국선변호인은 전속과 전담으로 나뉜다.
전속 국선변호인은 일반 사선 변호사님들이 사선도 하고 국선도 하는 경우이고,
전담 국선변호인은 법원의 위촉을 받아, 오로지 소속 법원에서 배당하는 형사사건만을 한다. 즉, 국선전담 변호사는 돈을 받고 하는 일체의 사건을 하지 않는다. 나는 국선전담 변호사이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극 중 장혜성(이보영)과 차관우(윤상현)가 맡은 역할이 국선전담 변호사다.
소속된 법원과 재판부가 정해져 있고 법원에서 배당해 주는 사건만 하기 때문에 모든 국선변호인은 사건을 선택할 수 없다.
유죄의 증거가 명백한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을 하면 ‘국선변호인’이라서 자백을 강요한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왜 변호사가 검사처럼 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변호사가 법정에서 무슨 주장을 하면,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변호사가 주도해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사자의 주장을 토대로 법률적인 주장을 할 뿐, 변호사가 하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의뢰인 또는 피고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다.
나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내용에 대한 조언도 해주지만,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편이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국선변호인이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하면 많은 피고인들이' 돈을 주지 않아서, 대강 하려고, 힘없는 서민이라서' 등의 오해를 한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그들이 물을 준 장미가 아니기 때문에 국선변호인에 대한 신뢰관계가 사선 변호인보다 약하다는 것. 그것은 이 관계의 태생이 그런 것이라 이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 사무실 국선 변호사님들 대부분 피고인에게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배울 점이 많은 인생을 살아서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고 백도 없고 사회에서 무시받고 아무도 얘기 들어주지 않는 사람도
손가락질당하고 사는 사람이나 그 어떤 사람이라도
우리의 피고인이 되었을 때만큼은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호칭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변호인이 나쁜 놈을 변호한다고 뭐라 그러고
피고인들은
우리 동네변호사 조들호나 하이에나의 정금자 변호사처럼 안 해준다고 뭐라 그러고
영화에서 나오는 국선변호인은
죄다 변론을 대강하고 자기 피고인을 골로 보내서 내 명예를 실추시키는 데에 이바지한다.
(심지어 영화 ‘7번 방의 선물’에서는 국선 변호인이 피고인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