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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책 소개)

by 몬스테라

주말에 책 한 권을 샀는데,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다.


저자 김완은 누군가 홀로 죽은 집, 쓰레기가 산처럼 쌓인 집, 오물이나 동물 사체로 가득한 집…. 그 집의 주인이나 가족도 치우기 어려운 곳을 청소하는 특수 청소업체 ‘하드웍스’ 대표이다.


누군가 홀로 죽으면 나의 일이 시작된다.

41쪽

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42쪽

가난해지면 필연적으로 더 고독해지는가? 빈궁해진 자에게는 가족조차 연락을 끊나 보다.

43쪽

가난한 자에게도 넉넉하다 뿐인가, 남아 넘쳐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편물이다. 체납고지서와 독촉장, 가스와 수도와 전기를 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미납요금 경고장, 경고한 대로 이제 공급을 중단했다는 최후통첩장이 우편함에 빽빽하게 꽂혀 있다. 현관문 앞엔 붉은 딱지 위 노란 딱지, 또 다른 우편물이 도착했으니 기일 내 찾아가라는 흰색 딱지가 붙는다.

44쪽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린 비슷한 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변호사님들이 모여 있다. 나이와 살아온 환경이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대체로 측은지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원래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일을 하다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경우와 안타까운 사정을 많이 만나다 보니, 처음에는 사건을 보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시인 박준의 ‘태백중앙병원’

태백중앙병원의
환자들은
더 아프게 죽는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더 아프게 죽는다.

재판 며칠 전 사무실에 만나 상담을 할 때에 만났던 사람은 한쪽 폐가 없이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느라 고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모 형제도 없고 배우지도 못하고 일평생 힘들게 살고 있었다. 폐지 줍는 일이 종종 그런 위험이 있는데 그도 절도죄로 재판받게 되었다.


재판 당일 법정에도, 법정 앞 복도에도 피고인이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했더니 지인이라며 누군가가 받았다.

본인 재판인데 법정에 오지도 않고 재판 시간에 전화를 지인이 받다니 어이가 없었다.

단호한 목소리로

ㅇㅇㅇ씨 바꿔주세요.라고 말했다.


“아, ㅇㅇㅇ씨 방금 죽었어요. 여기 ㅇㅇ대학병원 응급실이에요. 이제 방금 막 죽었대요.”

지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재판에 오지 않아서 알아보거나 기다리다 보면 그의 사망 소식이 들린다. 나는 이상하게도 나의 피고인들은 참 쉽게 죽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언제는 자살을 시도하려다 실패한 피고인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뇌병변 장애인이었고 독거노인이었다. 재판 진행에 그 집의 구조와 특정한 물건을 살피고 사진을 찍어 증거로 제출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가 장애 때문에 그 일을 잘할 수 없어서 방문했다.


가족과 단절된 채 단칸방에 사는 그의 방을 둘러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약봉지가 있었고, 그 방에 있는 유일한 사진은 그 피고인의 영정사진이었다. 그는 매일 자신의 영정사진 아래에서 자고 있었다. 그 집을 나오는데 그가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어떤 절도 피고인의 기록에는 검거될 당시 그의 가방에 착화탄이 들어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에게 들은 사정은 이렇다. 거리의 생활을 하다 고단한 삶에 지친 그는 수중의 모든 돈을 털어 착화탄과 소주를 구입했다. 그리고 이제 실행하려는 순간. 멍..


착화탄이 그의 목적에 도움이 되려면 최소 밀폐된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 하늘 아래 그가 들어갈 수 있는 지붕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착화탄은 그의 소유물이니 구치소에 영치되어 있을까. 출소할 때 가방과 함께 들고나가는 것일까.


자살위험이 있어서 구치소 내 CCTV가 있는 1인실에 수용되어 있는 피고인도 있다. 그는 유치장에서 자살시도를 하다가 실패했고, 구속된 이후에는 계속 감시받고 있다. 그는 고아원에서 나온 이후 힘들 때면 본드를 흡입하다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위반 전과가 반복되었다. 그를 만났을 때 그가 재판받을 의지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다투지 않았고 아무 할 말도 없으며 아무것도 제출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의 눈빛에 그는 이미 몸만 세상에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 느껴졌다.



185쪽

부탁하건대, 언젠가는 내가 당신의 자살을 막은 것을 용서해주면 좋겠다. 나는 그 순간 살아야 했고, 당신을 살려야만 내가 계속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배를 타고 있다.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

저자가 가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망자에 대한 예의,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대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이 일을 이런 사람이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에게 연대감이 들었다.

나도 아직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배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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