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기

(욕망을 내려 놓는 시간)

by 몬스테라


60대 남성 피고인을 국선변호 하게 되었다. 피고인은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기록을 보니 피고인이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에 첨부된 진단서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병명에 ‘인공소생에 성공한 심정지’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피고인의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피고인이 입원해 있다고 하는 **요양병원으로 갔다. 병원 원무과 안내를 받아 피고인이 있는 810호 병실에 들어서니 6개의 침상이 있었고 모두 고요하게 누워 있었다. 다들 코에 음식과 물을 넣을 투명한 줄을 달고 있었고 대부분 80대나 90대로 보였다.


피고인은 바지를 입지 않고 성인용기저귀만 찬 채로 있었다. 한 손은 침대에 묶여 있었다. 사건에 대해서 물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앉을 수도 없었고 음식물을 삼킬 수도 없었다. 나와 대화하는 중에도 성인용기저귀를 자꾸 풀어서 요양보호사가 다시 채우기를 반복했다. 그가 형사재판 법정에 스스로 설 수 있는 기적이 왔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날은 오지 못할 것 같았다.


피고인이 앞으로도 악화될 것이며 음식을 먹거나 대소변을 가리는 일, 스스로 앉는 일도 불가능하고 치매증상도 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병원 담당의사로부터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6명의 움직임 없는 사람들 속에서 피고인과 한참을 있었는데, 나는 그 방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계획이나 욕망대로 살지 않고 있는 상태. 존재 자체만이 의미 있는 상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고 속박에서도 벗어난,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로 보였다.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고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운다. 나도 그렇다. 가끔은 욕망만 있고 나는 없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많은 것을 하지만 내가 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고..
문득 내가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그들이 내려놓게 된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맛 집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단식원에 잠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집에서 단식을 하며 명상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음식을 만들면서 단식하기란 쉽지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단식원을 택했다. 단식의 장점을 검색해 보니 면역력이 좋아지고 노폐물과 독소가 배출되어 혈액이 깨끗해지고 오장육부가 튼튼해지며 살도 빠지고 피부가 맑아진다는 등 흡족한 내용들이 있었다. 3일만 연속으로 시간을 낼 수가 있어서 단식원에 있는 가장 짧은 프로그램인 3일 단식을 신청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신청했지만, 단식 전날에는 혹시 저혈당 쇼크가 오는 것은 아닌지 단식원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고 남아공에서 110일간 단식하고도 생존한 사람이 있다는 글을 찾고는 3일 단식으로는 하늘나라에 가지 않는다는 확신을 하고 숙면했다.


첫날인 토요일 단식원에 도착했다. 단식원은 예전에 유명한 짝짓기 예능프로그램 ‘짝’에 나오는 건물 같았다. 그 안에는 여자 1호 2호 3호가 있을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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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 방에 그 날 퇴소하는 20대 초반 여대생이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여자 1호 그녀는 10일간 단식을 했고 너무 힘들어서 마을에 있는 편의점으로 내려가 닭꼬치를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단식원에는 유니폼이 맞지 않아서 들어오게 된 승무원 여자 2호와 10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들어 온 사회복지사 여자 3호,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하는 48세 아가씨 여자 4호, 폭식과 폭음을 중단하기 위해 들어 온 미술학원 강사 여자 5호, 고등학생 아들과 진로문제로 다투고 항의성으로 가출했으나 갈 곳이 없어서 들어온 여자 6호가 있었다. 별도의 작은 건물에 51세 명랑한 모태솔로 남자 1호가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단식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후 2시에는 산책하기 프로그램이 있어서 단식원 원장님의 밴을 타고 단식중인 사람들이 떼로 산책을 하러 갔다. 나는 한 끼만 굶은 상태라 힘들지 않았지만 7일 이상인 단식자들인 여자 3호, 4호는 조금 걷다 벤치에 앉아 더는 못가겠으니 다녀오라고 했다. 단식이 목적이 아니었던 여자 6호도 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었고 2호와 나는 부지런히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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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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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면 그 안에 신이 있는 것 같다. 바람으로, 풍경으로, 햇살로, 비로, 꽃으로 나무로 나를 어루만져주고 쓰다듬어주는 느낌.


토요일 오후 4시에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단식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길고 긴 휴식시간이다. 따뜻한 감잎차를 마시면서 단식원 앞마당에서 풍욕을 했다. 단식원에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런데 여자 3호, 4호가 검정색 비닐봉지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들이 나한테 “쑥캐러 갈래요?”라고 했다. 이 산골에서 쑥을 캐다니, 너무 신나고 추억 돋을 것 같은 일이다. 흔쾌히 따라나섰다. 길을 걸으면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할머니에게 지금 뜯으시는 풀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것은 아욱, 이것은 머위..우리는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청했다. 그것은 자연과 식물에 대한 관심이 아니고 순수식탐에서 우러나온 관심이었다. 아욱국 맛있겠다, 머위 맛있겠다..다들 쩝 입맛을 다시고 쑥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쑥을 캐지 못하고 돌아왔다. 10일 단식으로 **요양병원 810호 할아버지들만큼 기력이 없어진 여자 3,4호는 쑥을 잡고 앉았다가 일어설 때 휘청거리며 신음했다. 결국 한번 앉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이유로 쑥은 캐지 못하고 돌아왔다.


여자 3호는 심각한 얼굴로 단식원 인근에 공사 중인 것이 위험시설물이라고 했다. 무슨 석유화학공장이 들어서나 싶어서 그 위험시설물이 뭐냐고 물으니 과자공장이라고 했다. 여자 4호는 탄식했다. 단식원 이제 어떡하냐고.


여자 6호는 참지 못하고 빵을 먹어버렸고, 다음 날 떠났다. 아들로부터 사과를 받은 모양이었다. 일요일에는 여자 4호의 제안에 따라 걷기 운동겸 *마트에 갔고, 우리는 시식코너를 무사히 통과하고 가장 위험지대인 조리식품 코너에서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으나 잘 참고 지나갔다. 여자 4호가 퇴소 후 사용할 믹서기를 골라주고 우리는 돌아왔다.


나에게는 마지막 날인 월요일에는 산책 후 요가 수업이 있었다. 요가수업 때는 여자들이 머무는 건물로 남자1호가 넘어와서 함께 요가를 해야 했다. 머리를 감을 힘이 없어 머리카락이 떡이 된 여자4호와 사소한 동작에도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자빠지는 남자 1호와 우리는 액체괴물같이 흐느적 거리며 대강 요가를 따라했다. 단순히 팔을 들고 터는 동작만으로도 한숨과 신음소리가 났고, 요가 선생님이 한쪽 다리라도 올리라고 하면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요가수업을 마치고 남은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떠났다. 정이 많은 그들은 전쟁 중 피난가는 사람들처럼 초췌하게 서서 손을 흔들었다. 잠깐 함께 했지만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단식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식 내내 땅콩 한 알, 두부 한 조각만 먹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3일째에는 메주덩어리도 안고 갉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식 중 녹여 먹던 죽염 몇 알은 나에게 신세계를 선사해 주었다. 내가 이번 단식으로 얻은 것은 욕망을 제어해본 경험으로 얻은 자신감, 그리고 자연에서 난 음식 재료들의 맛을 더 잘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카레를 하기 위해 당근을 썰다 한 조각 입에 넣어 씹어보면 당근이 이렇게 맛있었던가 싶다.


이후 **요양병원 810호에 누워 있던 피고인 재판이 있던 날, 단식결단의 씨앗이 되어 준 그는 여전히 그곳에 누워 있었고, 나 혼자 법정에 갔다. 그는 꿈에서 깨어났고,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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