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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봉사 - 밥을 떠주고 가치를 얻다.
by
몬스테라
Aug 11. 2020
예전에 영등포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오랫동안 무료급식을 해 온 한 단체에 자원봉사를 신청해서 한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양파도 까고 당근도 썰고 좋았다.
몇 시간 동안 분주하게 움직여서 배식을 하는데, 그 날 정해진 것은 4백인분이었다.
노숙인과 노인들, 멀리서 온 듯 큰 짐을 둘러매고 있는 사람들이 길고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찬을 만든 뒤 배식하는 곳에서 밥통, 국통, 각 반찬통 앞에서 국자와 주걱을 들고 서 있었다.
이제 한 명씩 우리 앞을 지나가면 각자 맡은 대로 떠 주면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봉사자들에게 일을 시키며 봉사를 진두지휘하는 간사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예전에는 노숙인으로서 무료급식소를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급식 시작시간이 되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입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길고 긴 줄을 지나다니며 반복해서 말했다.
오늘 생일이신 분!! 오늘 생일이신 분 앞으로 나오세요!
늘 있는 일이었던지 대열에서 한 두 사람씩 옆으로 비켜서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시간 전부터 서 있는 사람을 제치고 행색이 초라한 몇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진짜 오늘 생일이 맞느냐고 확인하는 사람도 없었고
왜 순서대로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다.
생일인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식사자리는 초라했지만
생일자가 먼저 배식을 받는 동안 사람들은 차분히 기다렸다.
그곳에도 존재 자체의 가치를 지켜주기 위한 엄숙한 룰이 있었던 것이다
.
생일자들이 한 명씩 지나가면, 밥을 떠 주는 사람이 “생일 축하드려요.”
국을 떠 주는 사람이 “생일 축하드려요.”
반찬을 주는 사람이 “생일 축하드려요.”
밥을 받는 사람은 고개를 까딱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 4백 명을 넘는 사람들이 와서 밥이 떨어진 어느 순간에는 줄을 끊고 돌려보내야 했다.
앞으로 나온 생일자 때문에 누군가는 밥을 먹지 못하는데도
배식은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졌다.
오늘 아침 친구의 생일이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문득 그날의 배식이 떠올랐다.
내가 본 가장 성스러운 식사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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