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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30. 2021

인간 관계에 대하여

  몇 년 전 직장을 옮기고 나서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에 통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마치 대단한 교양과 학식을 겸비하고 있는 것처럼 도도하고 고상했다. 반면 인간미를 느낄 수 없었는데 근무 시작부터 나는 그 분위기에 계속 겉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소탈하고 꾸밈없는 성향이기 때문에 내가 이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허우적대고 어색해 하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적응하지 못해서 잔뜩 긴장하고 지내고 있을 때 어느 날 인가부터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A는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지만 A는 친구처럼, 언니처럼 나를 응원해주었고 지지해주었다. 그리고 조직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간히 알려주어 분위기 파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져 나는 A가 나의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하며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A와 이야기를 나누고, 하늘을 바라보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 의미있고 행복했다. 마치 나도 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게 되는 벅찬 느낌이었다.


  어느 하루 정말 우울했던 나에게 A가 찾아와 잠깐 시간있냐고 묻더니 아주 짧은 드라이브와 달콤한 커피를 선물해주었다. 그 시기에 너무 침체되어 있던 나는 깜짝선물과 차창으로 들어오는 보드라운 바람과 A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 A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만나도 목례만 하고 얼른 자취를 감추고, 근접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오피셜한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후다닥 자리를 떴다. 바빠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급한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섭섭한 마음은 있었지만 직장 생활이라는 게 급할 때는 급한 불을 먼저 꺼야하니까.


  이후 아무렇지 않은 듯 차한잔 하자며 권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A는 바쁘다고 미안하다고 이해해달라는 말로 나와 함께 할 상황을 피했다. 여러차례 비슷한 권유를 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이런 상황이 거듭되면서 마음에 이상한 생각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나한테 뭔가 섭섭한 게 있나?' 하는 생각에 날을 잡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예전같지가 않다고, 나에게 뭔가 섭섭한 게 있는거냐고,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그런데 A의 대답은 나를 보고 있으면 내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 떠올라 힘들어진다고. 깜냥도 안되는 자신이 누군가를 걱정하고 도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버겁다고. 그냥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고 지내고 싶다고. 자신의 가족과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잘못 없으니 이런 자신을 이해하지 말라....고 했다. A의 대답을 듣고 절망했다. 바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거 절교 선언인가?


  인간관계라는게 무엇일까?

좋을 때 함께 하고 힘들 때 서로 위로해주면서 살아가는거 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인간관계라는 건 그런 거였는데. A가 힘들 때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욕해줄 누군가가 있으면 함께 욕해주고, A의 기쁜 일에 함께 웃고 행복해 해주는거. 또 반대로 나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A가 함께 동참해주는 거. 그게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는데 평생 내가 가지고 살아왔던 틀이 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데 마치 실연당한 기분이 들어서 한동안을 아파했다.


  그리고는 어느 날 마음이 너무 힘들어 상담을 받으러 갔다.

"제가 마음과 정성을 다 쏟은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어서 많이 힘들어요."

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상담사에게 위로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의외의 답을 듣고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 분도 자기가 살려고 그렇게 한 거에요. 그 사람의 결정을 존중해 주세요. 지금 배신당했다고 그 사람이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 것 조차 당신의 욕심이에요. 본인이 설정한 인간관계라는 프레임에 그 사람을 가둬두려고 하는거에요." 라고 하셨다.


  몰랐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게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인간관계를 끊어내기도 한다는 것.

(사실 나는 A에게 내가 유해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이것도 나의 오만일까.)


  생각해보니 나는 인간관계를 끊어본 적이 없다. 아파도 힘들어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했었고, 흐지부지하게 될지언정 상처를 주거나 과감하게 잘라내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나의 사전에는 없던 항목이었으니까.


  한 동안 마음은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상담을 통해서 사람마다 인간관계를 맺고, 매듭짓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나와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설사 그게 나에게 아픔이 될지라도 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게 나만의 틀이었다는 것.


40이 넘은, 어른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의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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