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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ug 21. 2021

존중이 필요해!

너와 나의 온도 차이

  나와는 하루에 채 10분도 대화하지 않는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친구 집에서 자고 올거야. 걱정마."

아들은 언젠가부터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해왔다.


  아들이 꺼낸 이야기에는 매번 그렇지만 한 번에 오케이가 나오지 않는다. 대화의 방식이 못마땅한 때문인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날도 어김없이... 반대모드.

"무슨 자고 오기까지 하냐. 그냥 잘 놀다가 들어와."

하지만 고집있는 아들은 자기의 주장을 관철한다.

"아니 자고 올거야. 그러기로 했어."

그럼 또 같은 패턴의 나의 이어진 대화

"그런 일이면 엄마에게 먼저 허락을 구해야 하는거 아니야? 통보하는 거냐?"


  어차피 결과는 아들에게 져서 그 아이 뜻대로 될거면서 번번히 갈등구조가 된다.

"아.. 모르겠고, 난 자고 올거야. 그렇게 알아." 하고 나갔다.

심지어 집에 있는 과자, 라면, 고기까지 챙겨 바리바리 싸들고. 변화를 거부하고 안정적인 패턴을 원하는 나에게 아들이 행하는 이런 돌발적인 일들은 큰 마음을 먹어야 수용이 가능한 일들이다.


  언젠가 부터는 아들의 뜻을 꺾을 수가 없는 이빨빠진 엄마가 되어버렸고, 원하든 원치않든 타율적 허락을 내린 상황이라 그날 하루만큼은 전화도 하지 않고,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온전히 노는데 집중하도록, 집생각 따위 하지 않도록 나름 배려를 해주었다.


  다음 날 아들이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친구랑 어제 잘 놀고 잘 잤어. 밖에서 더 돌아다니다가 놀았는데 옷 챙기러 친구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치킨을 사주셨어. 그거 먹고 좀 늦을 거 같아."

친구 집에 오래 있는건 민폐다, 일찍 정리하고 나와라, 너처럼 등치가 산만한 애가 남의 집에 버티고 있으면 부담스럽다, 적당히 놀다 오는거지 그 집에 뭉개고 있는거 예의가 아니다... 등등 잔소리 폭격을 쏟아냈다.

알았다고 대충 대답한 아들은 이 후 전화를 해도 안받고 연락이 없다.


  밤 늦게까지 잠 못자고 기다렸는데 치킨을 먹고 나서 잠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면서 집에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온단다. 아.. 미치겠다. 진짜 얘 왜 이러니. 당장 오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기다리는 가족 생각은 안하느냐, 그 정도의 판단이 안되느냐 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들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 나한테 명령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거야."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고 정나미가 똑 떨어졌다. 그리고는 진짜 다음날이 되서야 집에 돌아왔다. 두 밤이나 밖에서 외박을 하고서...


  아들이 꼴 보기 싫었다. 내가 말하는 족족 내 말을 깨부수듯 거부하고 무시하는 아들이 너무 미웠다. 아들이 나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요청했다. 자기가 엄마에게 짜증 부린건 미안하다고. 하지만 왜 엄마가 자기가 이야기하는 걸 항상 반대하느냐고. 자기를 믿고 존중해주면 안되느냐고 이야기했다. 자기가 항상 그러는 것도 아닌데 놀다보면 더 놀고 싶을 때도 있고 헤어지고 싶지 않을때도 있는데 그때 자기의 감정을 이해해주면 안되느냐고.


  그렇게 말하는데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는 내 마음속에 질문을 던졌다. '아들이 이야기 한 것들이 왜 못마땅했던 거야? 아들에게 왜 화가 난거야? 진짜 네가 원하는게 뭐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들이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섭섭했고, 내가 뭘 걱정하는지 몰라주는 아들이 원망스러웠고, 마냥 연락을 기다리게 하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허락을 구하거나, 상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통보받는 것이 싫다. 또 연락 안되는 것과 계획성이 없는 것이 화가 난다. 구체적인 것은 아니라도 적어도 큰 계획은 말해주면 좋겠다. 즉흥적으로 변경하면 엄마는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지치고 화가 난다. 처음부터 한 밤을 자고 온다던지, 두 밤을 자고 온다던지, 돌아오는 시간은 10시 이전이라던지.... 그런 안내를 해주면 내가 덜 힘들 것 같다." 그랬더니 아들은 순순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말썽부리는 어린애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대화를 마치고 나는 나를 돌아봤다. 내가 아직도 아이의 선택과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있었고, 아들이 밖에 나가거나 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사고치고 말썽부릴 것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엉성하고 별 볼일 없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기까지 많은 아픔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서로의 의견을 두고 으르렁 대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줬었는데 이제 아들은 내 생각보다 많이 자랐고, 자기 의견을 엄마에게 설득하려 할 만큼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수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고, 헤어릴 수 없이 많은 갈등이 있었던 우리가 상담소에 가서 알게 된 중요한 성격차이. 아들은 철저히 즉흥적이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이고, 나는 계획적이고 안전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우리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아이를 자꾸 내 틀 안에 가두려고 했었다는 것을 자인하는 순간이었다.


  놓아주자...  내려놓자...

비록 실패할지라도 자신이 선택했다면 그걸 존중해주자. 그리고 나도 존중받자. 존중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자. 마음속에 또 한 번의 폭풍이 일었지만 작은 뉘우침이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내 안의 틀을 철저히 부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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