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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ug 21. 2021

사춘기 놀이

의도적인 비 맞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부모님은 늘 바쁘셨다. 그리고 자립심을 키워준다며 학교에 무언가를 가져다 주신 적이 없다. 깜빡하고 온 준비물이나,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하라는 우산 따위...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랑 많이 받는 듯 귀한 대접 받는 아이들은 엄마 혹은 아빠가 교문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나처럼 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아이들은 그런 친구들을 시샘하는 눈초리로 흘겨보며 입을 삐죽댔던 기억이 난다.

"비 오면 비 맞고 가면 되지 뭐. 난 엄마 아빠가 우산 갖고 기다리는 거 별 스러워보여서 싫더라."

라고 말은 했지만 너무 부러웠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받은 큰 증거같아서 속상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몇몇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비를 맞았고, 맞다보면 괜히 또 장난을 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친구들이 빠져나간 학교 운동장을 비를 맞고 뛰어다니고 첨벙대고 놀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다. 사춘기의 결핍을 비와 함께 흘려보냈던 장면들이었다.


  그때는 그게 약간 서글펐었으나 시간이 흐르고 나니 가끔은 그리웠다. 그 시기가 아니면 다 큰 여자가 비를 맞고 돌아다닌다는게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기에 비를 맞고 싶다는 묘한 심리는 있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비가 내릴 때 창이 큰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던가, 차 안에 앉아 차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 집 안의 베란다를 활짝 열고 조금씩 새어들어오는 비의 감촉을 느끼는 정도로 만족하며 지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비가 내린다. 최근 한 달 넘게 주말 아침이면 남편이 나를 반 강제적으로 끌고 나가 10km 이상씩 걷기를 시켰는데 비가 오니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끌려나간다고 생각해서 '나는 걷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그 매력에 빠져드는 중인지 나가서 걸을 수 없다니 아쉽기만 했다.


  자꾸 창밖을 보며 '비가 오네. 비가 오네,' 아쉬워하고 있는데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남편이 주섬주섬 방수복을 꺼내온다.

"나갈래?"

그 한마디에 "나갈까?" 하고 따라나섰다.


  30년만일까? 이렇게 비를 맞고 철없이 신나 할 수 있는거? 아예 계획하고 비를 맞는다는거?

바닥 고인 물웅덩이도 철벙철벙 걸어보고, 하천에 물이 쏴~~ 흐르는 모습을 사진에도 담아보고.

'지난 주에는 바짝 말라 고약한 냄새가 나던 하천이 이제 물이 잘 흘러서 다행이다.' 하는 대화도 나누고.

걷는 내내 들떠서 목소리 톤이 높고, 수시로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대며, 남편에게 보드라운 말투로 이야기를 건네는 내가 좋았던지 남편도 말투가 보들보들하다.


  아이들 키우는데, 직장생활하는데, 남편 편안하게 해주려 마음 맞춰주느라 소녀같은 감성은 마음 저 밑바닥에 접어두었었는데 살포시 꺼내어 실행해보니 너무 행복하다.


  이번 여름에는 물놀이도, 여행도 가지 못해서 서운했던 마음이 저 멀리 사라졌다.

어느 바캉스보다 신나고 들떴던 사춘기 놀이 덕에 한동안 마음 몽글몽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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