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새로 오신 강사님이 계셨다. 본인은 자기 입으로 뜨내기 보따리 장수라 하셨지만 어느 정교수보다 부교수보다 강의에 열의를 가지고 임하셨다. 그녀는 매우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지적으로도 우월했다. 어떤 질문에도 긴장을 하거나, 말을 더듬는다거나, 주저함이 없이 시원하고 명확하게 답변을 잘 해주셨다.
차갑고 칼같은 강사님을 보며 강의를 같이 듣던 친구들은 그녀를 마치 얼음왕국의 왕비정도로 생각했고, 감히 두려워 가까이 가지 못했으나, 그녀의 수업 만큼은 모두 최선을 다해 경청했다.
강의실에 일찍 도착했던 어느 한 날. 늘 부지런하게 미리 오셔서 강의를 준비하시는 강사님, 그리고 그날따라 일찍 강의실에 들어선 나, 단둘이 수업 전 강의실에 있게 되었다. 너무 뻘쭘하고, 조용한 것이 마음에 쓰여 괜시리 강사님께 말을 걸었다.
"강사님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기분 좋아 일찍 집에서 나왔더니 이렇게 제일 먼저 도착했나봐요. 하하하."
뭐 이런 뉘앙스의 대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그런데 강사님. 강사님은 뭘 좋아하세요?"하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영역도 범위도 없이 침묵을 깨기위한 별스럽지 않은 질문. 그 질문에 강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저는 고모레비. 고모레비를 좋아해요."
그 때 나는 고모레비 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어감이 부드러웠고 입 안에서 살살 굴러가는 것 같이 예쁜 발음이었다. 몰랐던 것을 티내고 싶지 않아 아는 척을 하며 "아.. 그렇군요... "하고 대화를 얼버무릴 때쯤 친구들이 강의실에 몰려와서 대화가 끊어졌다.
차가운 얼음왕국 왕비같은 강사님 얼굴에 옅은 미소와 행복한 표정이 살짝 묻어나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해주셨던 그 단어. 고.모.레.비
처음 들어 보았던 그 단어를 잊어버릴세라 서둘러 그 의미를 찾아보았고, 부드럽고 예쁜 발음이었지만 낯설어 금방 잊어버릴 법도 한 그 단어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시절 차가워 보이기만 하던 강사님도 실은 강사 생활을 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을테지... 이 학교 저학교 다니시기도 힘들었을거고, 강의를 따내지 못하면 한낱 대학원생으로 수입이 없는 생활을 하셨어야 했을테지...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어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아닌 고모레비였다.
사전상의 의미로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그 단어가 그 이후 나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버렸다. 그 말이 너무 아름다웠다. 어느 새 나도 고모레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한국어에서는 이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 아름다운 표현이 일본에만 있는 것인가? 하며 안타까워하며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책을 읽다 발견한 표현
"볕뉘"
우리 말에도 볕뉘 라는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감성적인 단어가 우리말에도 있다는 것이 괜시리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때 당시의 강사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있는 지금의 나는 중년이 되어, 또 한번 감수성에 물이 오르는 시점이 되어 다시 그 때 강사님과의 대화를 떠올려본다.
"저는 고모레비. 고모레비를 좋아해요."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나뭇잎이 우거져 마치 다른 세상과 같은 느낌이 드는 건물 뒷편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내가 좋아하는 건물 뒷편 나무가 우거진 그 공간의 나뭇잎 사이로 미세하게 비치는 햇살-고모레비, 볕뉘 이다. 나도 고모레비를, 볕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강사님을 다시 만난다면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날 학교 캠퍼스를 함께 걸으며 서로의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싶다. 그리고 고모레비를, 볕뉘를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