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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Sep 06. 2021

산책 길에서

버드나무

자고 나면 한 뼘, 돌다 보면 한 뼘

어느새 길게 자란 가지가

하늘로 향했던 손이 땅으로 향하며 

지하의 페르세포네를 찾는다

땅으로 땅으로 팔을 뻗는다

애절하게 피리를 불어 사라진 그녀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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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산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주말 아침의 산책이 낙이 되었다. 침대 밖으로 나오기는 너무 힘들지만 막상 나오면 너무 상쾌하다. 10km쯤 걷다 보면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바닥에 찌르르한 통각이 오는데 이쯤 되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한 코스로 다니면 지루하기 때문에 매번 코스에 대해 고민한다. 정작 나는 길치이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이런 고민은 모두 남편의 몫. 계획적인 이 사람은 이마저도 행복한 모양이다.

본인이 행복해 하는데 행복한 일 많이 하게 두지 뭐.


  내가 가고 싶은 곳이나, 분위기에 대해 운만 떼면 된다. 산길이 좋다거나, 물가로 가고 싶다거나, 사람이 없는 길이라거나, 그늘진 곳이 좋다거나.. 이렇게 두루뭉수리 하게 이야기해도 코스가 척척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매번 다른 곳을 갈 수는 없기에 갔다 왔던 곳을 다시 가기도 하는데 내가 걷는 가장 기본 코스인 천변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다. 띄엄띄엄 갈때마다 좀더 푸르러지고 좀더 무성해져 이제는 내가 지나갈때 머리에 닿을 만큼 가지가 흐드러졌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듯 손을 뻗은 모양이 처연하고 처량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신 하네스에게 잡혀 땅속으로 사라져버려 어머니 데메테르가 사라진 페르세포네를 그리워하듯, 찾아내려하는 듯 손을 뻗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저 흐드러진 가지에 올라 앉아  이파리 하나를 떼어내어 버들피리를 부는 풍류 넘치는 선비의 모습도 떠오르고.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나무이다.


  선비가 버드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피리를 불어 페르세포네를 찾고자 한다면 동서양의 크로스오버인가?

산책하는 동안 만나는 일상의 자연과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상상 속 이야기들의 흐름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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