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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Sep 27. 2021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이 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동안 우울함 속에 빠져있었다. 사회생활도 어려웠고, 타인들과의 관계도 힘들었다. 집에 오면 내 자식이지만 자식같지 않은 아이와의 힘겨루기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해버렸다. 그래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아니 사실 나 자신에게조차 하례할 조금의 여유도 에너지도 없었다.


  남편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힘든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남편은 최대의 희생제물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 역시 많이 힘들었을 터. 까칠하게 칼날을 세운 아내와,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물어버릴것 같은 야수같은 아들. 편치않은 집. 그리고 분위기.


  나의 짜증과 원망은 남편에게 쏟아졌다. 모든 것이 남편의 탓만 같았고, 그렇게 미워하고 저주를 퍼부어야 조금이나마 내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뭐랄까 너의 잘못은 아니야... 하는 면죄부 같은 느낌이랄까?


  감정적인 동요가 워낙에 적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아내의 감정기복에도 무던히, 묵묵히 버티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무덤덤함이 마치 나를 비웃는 것만 같다고 생각되었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가끔 한마디 섭섭하다는 표현을 하면 그게 또 어찌나 나에게 크게 다가왔는지, 또 모든게 날 향한 비난의 화살같이 느껴져서 서러워 엉엉 울기도 했었다.


  그런 지옥같은 눈물의 시간 몇년이나 흘려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와 남편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속마음 하나 터놓지 못하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었는데, 힘들때 함께 힘들고, 기쁠때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바랬는데 속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배배꼬인 마음과 표현으로 점점 사이가 멀어지기만 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 내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는 되돌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말 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었던 것. 그는 가장 처절한 모습으로 그렇게 버텨주었던 것일텐데. 나를 직접적으로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내가 힘든 것을 몰라준다고 악을 써대왔던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을 보았다. 생각보다 지쳐보였고, 안쓰러워보였다. 그리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너무 힘들게 해왔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이 들고 나니 내가 남편을 얼마나 믿고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표현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받고 싶다고 있는 그대로 말해야겠다고. 내 생각 만으로 왜곡하고 편집해서 받아들이지 말고, 또 괜히 터무니 없는 말 해서 관심 끌려고 하지 말고 솔직해 지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니 나의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남편에게 훨씬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지금 그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어떤 컨디션인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작은 변화를 느꼈는지 남편도 나에게 부드러워지고, 농담도 던지고, 같이 있는 시간에 다정 다감한 말투로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내가 바뀌면 모두가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이 바뀌지 않아서 불행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던 내 모습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아이는 아직도 사춘기의 정점이지만... 어차피 내가 아둥바둥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고. 시간이 흘러야 철이 들고 어른이 될 텐데 뭐가 그리 조바심이 났을까.


  이제는 나의 감정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남편에게 관심을 갖고 행동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 아이의 사춘기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내 마음은 변함없으니까.


  이렇게 마음을 바꿔먹으니 똑같은 상황도 그렇게 불행하기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도 부끄럽지 않다고 다독여주고 싶다. 오늘도 한 발짝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내가 또 같은 패턴에 허우적 대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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