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의 그 친구
좀 촌럽고 유치했달까???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니 피부는 까맣게 그을렸고 머리카락도 까만데다 숱까지 많아서 약간 칙칙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단발머리의 여중생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런거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냐는 엄마의 타박을 못이겨 과감하게 짧은 커트 머리 스타일을 하게 되었다.
나름 그 머리가 잘 어울렸던지 그 이후 학창시절 내내 짧은 커트 머리를 고수했다.
이렇게 짧은 머리를 하고 나니 머리손질을 따로 하지 않아서 편했고 어찌나 시원하고 가볍고 좋던지...
단지 그것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 시절 여중 여고에서 흔히 있는 소년미가 드러나는 여학생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애정어린 눈빛.
언젠가부터 그것을 내가 받고 있었다.
지금이야 이성교제가 활발하고 자연스러운 시대이지만.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많은 부분에서 구속당하고 억압을 받았었더랬다.
이성교제는 그 중 가장 금기시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여중 여고에서는 머스마 같은 분위기가 나는 친구들을 이성 친구 대신 좋아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같은 나 역시 학급의 친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후배들에게 편지와 선물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성도, 동성도 아닌 묘한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받는 사랑과 관심, 인기...
평생 받아본 적이 없던 것들이어서 그랬을까? 꿈을 꾸는 듯 마냥 달콤하기만 했다.
그 중 특히 어떤 한 친구는 나를 너무 좋아하여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하루가 멀다하고 써 주었고
나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나를 좋아해주는 그 친구가 고마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친구의 행동이 숨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친구와 조금씩 거리를 두려고 했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잘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나를 멀리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왜 그런것일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친구들에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맞는건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물어 보게 되었다.
그들의 대답은 나를 좋아한다고 하던 그 친구가 찾아와서 나와 어울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갔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친하게 지내지 말라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고, 오기가 생겼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일부러 더 많이 가졌고, 그 친구와는 더 많이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의 행동에 괴로웠던지 그 친구는 나를 마주할때마다 괴로운 내색을 비쳤고, 많이 힘들어했다.
그 친구의 괴로움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 했다.
다른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수근거릴 것도 신경이 쓰였고, 한 친구와만 어울리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었으니까...
시간이 흘러 아기엄마가 되어 만난 적이 있다.
둘 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기도 하나씩 낳고 만났는데
그 친구는 그때에도 나에 대한 못다한 사랑을 아쉬워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친구의 남편까지도 나의 존재를 알고 있고, 남편도 도대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며 나를 만나보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 친구에 비하면 도리어 나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이었을까?
가끔 나를 넘치게 사랑해주었던 그 친구가 생각나 고맙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그렇게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쏟아부었나 미안하기도 하고.. 아련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