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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Jul 28. 2021

나의 고양이, 나의 젤리클

       

  2014년 초가을 어느 날 신발장 앞에 꾹꾹 손으로 눌러 쓴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엄마! 비닐봉지에 고양이 있어요. 키우게 해 주세요.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뿌잉뿌잉 사랑해요. 버리지 마세요. 저희 올 때까지 잘 돌봐주세요. ♡×10000 진심.”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나 다를까 편지 옆에는 뿌연 비닐 봉지가, 그 봉지 안에는 째끄만 아기고양이가 들어있었다. 요 조그만 생물이 봉지에서 나와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 걱정이 되었는지, 한편 고양이가 숨 쉴 구멍은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런저런 고민이 묻어있는 듯 봉지는 스카치테이프가 붙여져 있었고, 아기고양이가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게 뭐야? 고양이가 무슨 말이야...     

  

  아주 어릴 적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자기 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자랑하던 친구는 아기고양이를 보여주겠다고 초대를 했고, 나는 생전 처음 근접 거리에서 본 고양이에게 날카로운 발톱으로 테러를 당했다. 자신의 아기에게 해코지를 할까 걱정되었던지 어미 고양이는 나에게 무섭게 달려들었고 마치 낯선 이방인을 쫓아내려는 듯 세게 할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나의 인생에 고양이는 들어올 수 없는, 들어와서는 안 되는 무서운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고양이라니... 이게 뭐냐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돌아온 이후 눈치를 살살 봐가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거부 의사를 확실하게 밝혔다. ‘엄마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고, ‘너희 둘 키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힘든데 무슨 고양이냐’고, ‘털 날리고, 똥 싸대고, 여기저기 어지르기만 할 고양이를 들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누가 키우냐’고. 


  그러나 아이들은 애절하게 부탁했다. 제발 키우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사정을 했다. 이때 만큼은 나도 지지 않았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 아기고양이 엄마가 얼마나 애타게 아기를 찾겠느냐고 감성에 호소까지 하면서.


  아기고양이 몰골을 보아하니 몇 날 며칠은 굶은 듯 하였고,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보였다. 내가 못 키운다고 내놓으면 이 아이가 어떻게 될까 아주 잠깐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키울 자신도 없었거니와, 귀찮았고, 책임지기 싫었고,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내 알 바 아니잖아? 그래도 일말의 연민은 있었던지 우유 한 그릇, 참치 한 캔을 들고 아기고양이가 원래 있었다던 자리에 데려다 두었다. 엄마 고양이가 데려가 주기를 바라면서. 


  밤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뒤척여 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조그맣고 꼬질꼬질하던 그 녀석이 자꾸 눈에 밟혔다.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우리 잠깐 나갔다 올래? 아까 내다놓은 아기고양이있잖아. 그 고양이가 엄마한테 갔는지만 확인하고 오자.”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며 남편이 군소리 없이 따라왔다. 옆에서 잠을 못 자고 뒤척이니 그럴 바에 어서 확인이나 시키고 재우자 싶었나 보다. 둘이서 손전등을 들고 아기고양이를 데려다 두었던 곳에 가보니, 세상에 그 조그만 아기가 우유도, 참치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에옹에옹’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추운지 무서운지 오들오들 떨면서.


  ‘왜 엄마한테 안 간 거야?, 왜 안 먹고 이러고 있는 거야? 나 어떡하라고 너 이러고 있는 거야?’

가뜩이나 걱정이 되어 나와봤는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자는 건지... 아기고양이가 어미에게서 버려졌다는 것을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책임지기 싫어서 내다 두었던 건데... 왜 저러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내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라는 마음으로 못 본 척 발길을 돌리려는데, 그 조그만 아기가 뒤에서 안간 힘을 쓰며 따라왔다. 지금 놓치면 마치 자신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다는 듯이. 여러 방법을 써서 따돌려 보려 애를 썼으나 의지가 강한 녀석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뒤를 쫓아왔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단호했던 나에게 흔들리는 내가 말했다. ‘밤공기가 싸늘한 초가을에 아기를 이렇게 두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잠시만 데리고 있자. 그냥 며칠만, 아니 몇 주만 아기가 죽지 않을 때까지만 데리고 있자.’ 


  그날 밤 달달 떨리는 나의 손으로, 오들오들 떠는 그 조그만 녀석을 들고 집에 돌아왔다. 실망과 상실의 마음을 안고 잠들었던 아이들은 이튿날 아침 ‘에옹에옹’ 하는 아기고양이를 보며 환호했다.  


  하교 후에 아이들과 함께 동물병원에 가서 아기고양이가 먹을 분유를 사고, 필요한 사항을 배워왔다. 그날부터 우리는 고양이의 주인이, 아니 집사가 되었다. 너무 어린 고양이라 젖을 먹여야 하는데 어미가 없으니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것, 적어도 생후 40일은 되어야 다른 집으로 입양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고양이가 집에 들어온 경위에 대해 들으신 선생님은 지금 이런 날씨에 아기고양이를 다시 바깥에 내다 놓으면 치사율이 70%이상 된다며 엄포를 주셨다. 

 

  ‘그래, 딱 40일까지만이야. 그 이상은 안 돼.’ 마음속으로 결심하며 주변에 고양이 입양처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우선 데리고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케어하겠다는 일념 하에 먹이기, 재우기, 체온 보호하기, 배변시키기, 포근하게 해주기 등 집사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했다.

 

  다행히도 고양이 집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어서 입양처가 쉽게 정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0일이 되어가던 어느 날. 아기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녀석을 어떻게 보내나? 보내고 나면 허전해서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났다. 마치 배 아파서 낳은 내 자식을 다른 집에 떼어놓는 기분이랄까? 며칠간 고민하며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한 생명을 거두는 일인데 쉽게 판단하지 마. 평균 수명이 15년이라는데 감당할 자신이 있어?’ 그런데 내 맘속의 대답은 ‘이런저런 이유를 아무리 갖다 대도 우선 나는 못 보내.’였다.


  결국 입양처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그 녀석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떠나보낼 아이에게 특별한 이름은 지어주지 말자고 생각해서 ‘냥이’라고 불러주고 있었는데, 이제 어엿한 우리 가족으로 삼기로 했으니 번듯한 이름을 지어주자는 가족들 의견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모아보았다. 다양한 이름이 나왔지만 그 중 선정된 이름은, 뮤지컬 캣츠에 나오는 고양이들인 ‘젤리클 캣’-그 고양이들은 한 마리의 선발된 고양이가 새 생명을 얻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에서 따와서 ‘젤리클’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스트릿 출신, 꼬질이에게 무슨 그런 멋진 이름을 붙여주냐는 주변의 비아냥을 무릅쓰고 우리는 이 녀석에게 젤리클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또한 고양이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유튜브에 나오는 고양이 잘 키우는 법을 구독하고, 고양이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양이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더 많이 알아가게 되었다.


  어느 정도 귀찮게 해야 참아주는지, 어느 정도 무관심해야 편안하게 쉴 수 있는지... 까다로운 고양이와의 사랑의 경계와 지켜야 할 암묵적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녀석은, 아니 나의 주인님 젤리클은 우리에게 너무나 커다란 존재가 되어버렸다. 현실을 초월한 존재처럼 우리들의 감정과 가족 내의 분위기를 읽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알기나 한 듯이 가족들이 싸울 때는 큰 소리로 야옹야옹 앙칼지게 울어대서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만들었다. 똑똑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참고 참았다가 베란다 앞에 앉아(고양이 화장실이 베란다에 있다.) 야옹야옹 눈을 맞춰가며 문을 열어달라고 애처롭게 울면서 바라보고, 밥이 먹고 싶을 때는 밥 그릇 앞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싶으면 창문 앞에 앉아서, 놀고 싶을 때는 장난감을 물고 와서... 인간의 말만 하지 못할 뿐 자신의 의사표현을 하면서 톡톡히 주인으로서 집사를 제대로 부릴 줄 아는 위엄있는 멋쟁이 고양이가 되었다.     


  7년 후, 젤리클을 집에 데리고 왔던, 귀여운 편지를 써놓았던 꼬마는 악당같은 사춘기 소년이 되어 있었다. 사춘기 소년은 온몸을 다해 가족들을 밀어냈고, 자신의 어두운 아우라를 온 가족에게 뿜어냈다. 그 때문에 온 가족은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대화가 적어졌고,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도무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던 힘든 그 시기에 젤리클은 나에게, 누구도 주지 못하는 위로와 위안을 주었다. 아마 우리 가족 모두에게 그렇게 해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슬프거나 외로워서 훌쩍대고 있으면 가만히 다가와 자기의 몸을 비벼주었고, 몸이 아픈 날 조퇴라도 하고 돌아오면 침대 위까지 따라 올라와 자신의 등을 나의 몸에 밀착시키고 함께 있어 주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자신의 온몸을 다해서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이. 그런데 그 와중에도 유독 젤리클 앞에서만큼은 악당 소년은 세상 다정하고 따뜻한 형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아들은 나에게 ‘그때 엄마가 젤리클을 키우게 해주지 않았다면, 진짜 많이 외로웠을 거야. 나한테 젤리클은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거든. 외롭고 답답할 때 젤리클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라며 젤리클을 다시 데리고 와 준 것에 대해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젤리클은 어떤 존재일까? 한 단어로, 한 마디로는 결코 표현할 수가 없지만, 마음 한복판에 크게 자리 잡은, 강렬하고 뭉클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약간 노쇠해져 느릿느릿하며, 앉아 쉬는 것이 하루의 큰 일과가 된 어르신이 된 젤리클은 나이가 든 만큼 더 그윽하고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신세를 위로라도 해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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