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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Nov 08. 2021

이별

나를 사랑할 시간 - 나에 대한 정의

유난히 이별이 힘들다. 

매년 하는 아이들과의 이별, 다른 근무지로 떠나는 동료와의 이별부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정들었던 물건과의 이별 등등... 모든 이별이 힘들다.

미련이 많은 탓일까?

관계를 제대로 매듭짓는 능력이 부족한 탓일까?

관계를 맺은 모든 것들과의 이별은 나를 아프게 한다.     

18년간 쓰던 냉장고가 말썽을 부렸다.

중간중간 문제가 있었지만 잘 고쳐서 썼고, 잘 달래왔는데 어느 날 문에서 찢어지는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이것을 고쳐 쓰려니 오래된 모델이라 부품도 없는 모양이다.

가족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했다. 냉장고가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냉장고의 모터가 아직 멈추지 않았는데 바꾸려니 마음이 좋지 못하다 했다.

아들이 말했다. 냉장고가 죽기 전에 자기가 죽을 것 같다고. 문 열 때마다 냉장고가 부서질까 스트레스 받는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은 애착이 아니라 미련이었나보다고.     

고양이 앨리스가 사라졌다.

어디에서 쉬고 있으려니 했다. 

하루 평균 18시간은 자는 녀석이니 분명 사람 손이 귀찮아서 숨어있는 거라고. 반나절이 지나고 해가 산자락 끝에 걸린 시각에 불현듯 녀석이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찾기 시작했다. 온 집안 구석을 뒤지고, 옷장 속의 옷을 다 꺼내고, 부엌 싱크대며 선반이며 다 꺼내도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옥상에 나가서 살펴보아도 없었다. 베란다, 세탁기, 건조대 안까지 다 찾아봐도 없었다. 어디에 간 걸까?

혹시 누가 현관문을 열어 둔 사이 밖으로 빠져나갔나? 22층의 아파트 계단을 샅샅이 뒤졌고, 지상, 지하주차장, 화단 풀숲을 다 뒤져도 없었다. 애꿎은 길냥이에게 앨리스의 행방을 물었더니 ‘에옹~~~’하는 화내는 답변만 들었다.

아이들은 고양이 먹이를 들고 나갔다. 먹이 냄새를 맡으면 나타날지도 모른다면서...

이 녀석이 어디로 갔을까. 아이를 보았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조각맞춤 하여 시간을 거슬러 동선을 추측해보니, 외출과는 무관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지??? 고양이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친구 왈, 고양이들은 머리가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다면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으니 다시, 더 샅샅이 찾아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다시 옥상에 올라갔다. 창고에 들어가 ‘앨리스 앨리스...’ 애타게 불렀다. 답변이 없다.

보통은 자기 이름을 들으면 작은 소리로 ‘냐앙~’하고 답을 해주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구석구석 물건들 사이를 비춰보았는데....

잔뜩 겁먹은 얼굴로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 납작한 털 뭉치가 보였다. 몸을 최대한 작고 납작하게 만든 채 숨어있는 앨리스. 아!!! 드디어 찾았다. 아이를 찾아 안아서 들어 올리는데 녀석이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폭 안긴다. 무서웠나 보다. 자기를 찾겠다며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니는 소리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긴장된 목소리도 아이를 더욱 숨게 만들었나 보다.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앨리스를 찾고 나니 안도감 때문인지 갑자기 터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엉엉~” 소리 내며 통곡을 했다. 온 가족들이 놀래서 달래주는데도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정작 무서웠을 앨리스를 달래주지 못하고 나를 달래고 있던 웃지 못할 해프닝.

앨리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모르고 있다가 그 일 이후 비로소 의미를 알게 되었다.     

담임 반 아이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날.

대범하고 의연하고 쿨하게 축복의 말 한마디 던지고 돌아서고 싶은데, 어린 학생들 앞에서도 주책없이 왈칵 눈물을 쏟는 나를 발견한다. 

이 마음은 언제쯤 제대로 된 매듭을 지을 수 있을까?

사랑할 때는 충분히 사랑하고, 헤어질 때는 또 쿨하게 헤어질 수는 없을까?

그런 쿨한 모습의 나를 상상해 본다.

하지만... 아직 어렵다. 나에게 이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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