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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AR

by 몬스테라

2010년 새차를 샀었다.

중고였거나 경차였던 과거의 차와는 다르게 새 차로 말이다. ‘이 차를 타는 내가 좋아, 승차감이 좋아’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차였다.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이 차를 타고 가족 여행도 가고, 두 아이의 입학식, 졸업식을 다녔고, 아이들의 학원과 학교 라이딩을 다녔다. 타지에 발령받은 남편의 근무지에 놀러가기도 했다.

가끔은 차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했고, 음악을 듣기도 했고, 자동차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은 차에 앉아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기도 하고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길고양이를 주워서 고양이를 입양하던 날에도, 고양이들 예방접종을 하거나 아파서 진료받으러 동물병원에 갈 때도 함께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고, 가끔은 차 안에서 싸우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 남은 싸움을 하기도 했다.

차 안에서 음악이 나오면 아이들이 신나게 노래를 따라불렀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그 순간을 녹음하기도 했고, 남편이 해외 출장으로 없는 시기에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놀러가기도 했다.

큰 아이의 사춘기 때는 그 차를 타고 학교에 종종 불려도 갔으며, 차 안에서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마음이 힘들 때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차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듣기도 했고, 등받이를 기울이고 쪽잠을 자기도 했다. 눈이 올 때, 비가 올 때, 더울 때, 추울 때 쉬지 않고 나와 함께였다.

아 맞다. 부부싸움을 하고 충동적으로 집을 뛰쳐나와 정처 없이 핸들을 잡았을 때도 나와 함께 이름도 모르는 고속도로를 함께 달렸다.

많은 시간이 지나 말썽부리던 아들이 성인이 되어 운전 연수를 할 때도,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가에 들어간다고 호들갑 떨며 짐을 챙길 때도, 딸 아이가 외국에 나갈 때도 언제나 함께였다.

그러는 사이 엔진오일이 샜다. 기어가 고장이 났는지 운행 중에 RPM이 올라가지 않는 일도 있었다. 휠얼라이먼트도 틀어졌는지 뭔가 이상해졌고, 차에서 나는 낯선 삐걱대는 소리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비소에서는 차를 수리하면 웬만한 중고차 가격 이상이 나오니 그냥 퍼질 때까지 타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에어컨도 성능이 나빠졌는지 좀처럼 시원해지도 않았다.

이제는 서서히 보내주어야 하는 싶은 생각이 아주 살짝 들었을 때, 남편과 차에 대해 상의를 했더니 성격 급한 분이 그때부터 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K사의 ###, S사의 ***, H사의 @@@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시승을 해보다가 자기가 제일 맘에 든다는 R사의 자동차를 시승해보자고 했다. 나는 차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하고, 차에 대해 뭐가 좋고 말고 따지는 성격도 아니었다. 잘 알지 못하니 따질 것도 없는 것이겠지만.

타다 보면 정이 들고, 길이 들면 그게 내 차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결국 남편의 취향을 고려하여 차를 계약했다. 다른 브랜드는 계약하고도 3, 4개월은 걸린다는데 이 회사는 2, 3주면 나온다고 하니 그것도 왠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지인들이 오래된 고물차 정리하고 새차를 갈아타라고 종용했는데 결국 14년 10개월을 함께 했던 애착 자동차를 해외로 입양보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내 차가 말소가 된다고 하니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딜러를 만났고 적은 금액이지만 중고 가격을 쳐준다는 곳이 나와 팔았다고 했다. 이미 헤어질 날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헤어지는 당일 내 눈으로 떠나는 차의 뒷모습을 보지 못하니 섭섭했다. 그렇다고 볼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애착 자동차는 떠났다.

지금 나에게는 한 달이 조금 지난 새 차가 있다. 떠난 차와의 많은 추억은 마음에 새기고 이제 새로운 차와 친밀도 높은 교류를 해야 한다. 아름답고 소중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아직은 서로 낯가림 중이라 어색하고, 감도 없고, 버벅대지만 앞으로 나에게 새로운 추억들을 안겨줄 시간을 기대하며 오늘도 함께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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