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에서 방영한 <미지의 서울>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이다. 세상의 시선이 두려운 주인공이 방안에 틀어박혀 몇 년을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해주신 말씀이다. 숨는 것도 용기이며 다 살자고 하는 짓이다... 하는 말씀과 함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어떤 막막한 일이나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서 다짐을 하듯 방문을 나서며 읊는다.
“어제는 지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지인의 추천으로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위로가 휘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코끝이 매워서 티슈를 뽑아들었다. 지금 못나빠진 모습이지만 아직 모르는 오늘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뭐든 해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위로와 응원이 느껴져서였다.
남의 실수에는 그럴 수 있지... 하면서 관대한 편이었지만, 나의 실수에는 유독 가혹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궁지에 몰아넣을 때가 있었다. 마치 완벽하게 성취해 내는 것만이 나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인냥 치열하고 열심이었던 때가 있었다. 가끔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내 자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좌절하기 일쑤였는데, 실수한 일을 복기하고 앞으로 잘해야겠다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일을 어그러뜨린 못난 자신에 대해 자책을 했다.
일이 실패하면 일을 생각하면 되는 것을, 꼭 자신을 탓하고 그래서 결국 나는 못났다, 하는 결론까지 이어져 나를 괴롭히는 수순을 밟았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어렸고, 젊었고, 미숙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 드는데 과거의 나는 나에게 참으로 엄격했다.
지금은 잊어버리는 게 다반사요, 잃어버리는 것이 부지기수다. 외국어 전공자임에도 외국어는커녕 한국어도 기억이 안나서 헤매고 있으니 원. 너무 많이 깜빡거려서 차분하게 메모를 하자 싶어 다이어리에 나름 정리를 한다고 해놓는데도, 가끔은 급한 마음에서인지 단어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써놓은 알 수 없는 초성들만 적혀 있을 때도 있다.
분명 무슨 스케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면 허술한 나를 챙겨주기라도 하듯 주변인들이 ‘무슨무슨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하는 식의 질문을 해온다. 아차, 그거였지.
이제는 나를 받아들인다. 나에게 내 이상향을 들이밀지 않는다. 나는 그냥 이렇게 생겼으니까.
과거를 돌아보며 왜 그랬을까 그러지말걸 후회하는 일도 많았고, 먼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저당잡히던 때도 많았다. 지금 당장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성공이 훨씬 근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현재를 만끽하는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직 모르는 오늘 하루를 만끽하며 온전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내 인생을 있게 해준 이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