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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대처하는 자세 - 누가 방법 좀 알려줘요>

by 몬스테라

또 시작인가? 이번에는 뭘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가 무음 설정 된 휴대폰에 관리자의 부재중 전화가 뜬 것을 보고 나니 더는 입에 숟가락을 넣을 수 없었다. 먹던 밥을 버리고 책상에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직감대로라면 또 시작이라는 신호겠지.

‘만약 다시 시작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두고 오랜 시간 고민을 했었지만 답을 찾지 못하던 터였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는데 부딪히고 싶지 않았던 민원을 다시 듣게 되다니.


민원의 내용인즉슨 지난 1학기에 자신이 제출한 답안을 틀렸다고 채점했는데 그 이유가 부당하다며 민원을 올렸었다. 그 민원이 자신이 희망하는 대로 풀리지 않자 이어서 인신공격의 민원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수업 방식과 수업 내용을 가지고 공격을 했으나 더 이상 대응할 거리도, 문제도 없다고 판단한 교육청과 학교는 답변서를 냈고, 잠정적 종결을 예상했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던 상태라 2학기를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좀 했었는데, 방학을 하고 나니 그런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개학을 했고, 고3 아이들의 생기부에 2학기 수행평가 내용을 추가로 좀 더 넣어주면 괜찮은 세특이 되겠구나 싶어 개학하자마자 공지한 대로 수행평가를 시작했다.

그런데 또 민원이 올라왔다. 2학기에 시행한 수행평가를 1학기 세특에 왜 써주냐는 내용의 민원. 서둘러 작업을 시작해야했고 문구에 신경을 써야하는 귀찮음은 있었지만 마음을 내어 아이들의 생기부에 한 글자라도 더 써주고 싶었다. 그랬던 마음이 무색해졌다. 부끄러웠다. 관리자에게 호출을 받고 가보니 아직 평가계획 결재도 하기 전인데 괜한 부스럼 만들지 말고, 2학기 내용을 써주지 말라고 했다.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한 아이의 민원으로 온 학교가 긴장 상태로 평가계획을 3주나 검토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재가 완료되었다. 결재가 완료되자마자 3학년 아이들이 비일비재하게 결석하기 전에 수행평가를 서둘러 실시해야겠다는 생각에 결재 당일 단체 공지를 띄웠고 3일간에 나누어 보는 수행평가 중 첫 번째 수행평가를 바로 실시했다. 1학기 말부터 이미 사전에 충분히 공지를 했고, 수행평가 방식이며 내용에 대해 충분히 숙지할 수 있게 설명을 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당일 공지하고 당일 수행을 보게 했다며 민원을 올렸다고 했다. 관리자는 왜 그랬냐며 뭐가 급했냐며 타박했다.


친한 샘들 왈, 학교에서 제자를 사귀어도, 시험문제를 베껴내도, 수업을 펑크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열심히 하려고 하다 민원 생긴거 별일 아니라며 자조 섞인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렇지, 맞지.


그런데 이제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어졌다.

악성 민원러가 되어 끊임없이 민원을 넣는 그 아이가 문제인건지, 이런 민원을 야기하고 있는 내가 문제인건지 모르겠다. 이제는 그것조차 알 수가 없다.

만일 그 아이가 나를 타겟으로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는다고 가정한다 쳐도, 왜 나는 그 아이의 타겟이 될만한 빌미를 제공했는가 말이다.

그럼 이 아이가 원하는 건 도대체 뭘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우선 나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을 했다. 올해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복기해보니 내가 나서서 뭔가를 제공하려고 하는 게 발단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기 신화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힘들어하는 옆 사람을 그냥 보고 있지 못하는 마음,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 마음이 편해져서 바로 행동에 옮려려는 습성.

전통적 사회에서는 어쩜 미덕의 한 덕목이었을지도 모를 요소가 지금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 구닥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지 않는 선물을 내어주고 그에 대한 감사를 바라는 모양새를 꿈꿔왔던 것일까?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지금 마음에는 미움이 가득찼는데, 그 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민원을 밥 먹듯 넣는 그 아이인지(익명을 요구해서 그 아이를 추정할 수는 있지만 아는 체 할 수는 없다.), 호들갑 떨며 일이 생길 때마다 질책해대는 관리자인지, 움직이기만 해도 잡음을 만드는 나 자신인지,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이 시대인지 화살을 어디로 돌려야하긴 하겠는데 방향을 몰라 계속 맘속에서 넣다 꺼냈다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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