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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먹기에 달렸다

악성 민원으로 병가를 들어가며...

by 몬스테라


몇 달간 악성 민원으로 시달리며 심난하고 우울했다. 교사라는 이 직업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생각들은 머릿속에 딱 들러 붙어 떨쳐내려 해도 쳐지지 않았다.

내 마음가짐과 교육방식은 과연 올바른 방향이었가, 라는 생각도.

이 일로 인해 내 인생이 잠깐 stop되었다는 생각에 막막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설움이 북받쳐 갑자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암튼 감정이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락 내리락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D선생님이 카풀을 해달라며 연락이 왔다.

“얼마든지요~”하고 대답을 했고, 퇴근시간이 되어 같이 차를 타고 퇴근길에 올랐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D선생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나는 이번 일이 선생님에게 큰 교훈이 되었으면 해요.”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속으로는 갸우뚱했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런데 D선생님은 다시

“이번 일을 통해서 앞으로는 너무 자신을 다 갈아넣지 마시고 선생님이 즐거울 만한 일에 시간을 더 쏟으시기를 바래요. 무엇보다 우선 순위에 선생님을 두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해주는데 별것 아닌 이 말이 흑백으로 암담했던 내 마음에 컬러가 덧입혀지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에게 더 다가갈 수 없게 되고, 거리감이 생겨 괴로워했는데, 같은 상황을 두고 해주신 D선생님의 말은 머릿속을 시원하게 했다.

이 감각적인 경험은 ‘가장 먼저 나를 돌보라는 의미구나.’라는 위로로 느껴졌고 마음이 엄청 가벼워졌다.

한동안 정신과 상담을 다니며 3개월의 진단을 받았고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병가를 들어가게 되면서 갑자기 아이들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무책임한 교사가 된것 같아 뒤숭숭했다. 지금 학교에서 7년차로, 내 마지막이 고작 이런 결말인가 한탄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D선생님의 조언을 적용하여 생각을 전환해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어진 ‘말년 휴가’라고 생각하자 싶으니 감사하게 느껴졌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바라보는 시각을 살짝만 바꾸니 마음이 이리도 편안해지는구나.

내가 가졌던 번뇌도 결국 ‘일체유심조’였구나.

20년 이상 근무하면 주어진다는 장기재직휴가 7일에 비할 쏘냐. 무려 80여일의 휴가를 받게 되었는데. 나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말년휴가를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졌다.

빈둥대도 좋고, 그간 밀린 청소도 좋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매체도 원없이 볼 수 있다. 마음이 동하여 사놓고 채 읽지 못했던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낮에 훌쩍 근교로 바람쐬러 나갈 수도 있다. 운동도 마음껏 할 수 있고, 귀여운 3냥이들과 지지고 볶을 수도 있을 테지.

관심있던 글쓰기 연수도 듣고, 글도 쓰며 하루하루 의미있고 상쾌하게 보내려고 한다. 마음이 한껏 고양되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한동안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마음은 구름 흘러가듯 한쪽으로 보내버리고, 올해 마지막 남은 근무 3일, 마음을 나눠주었던 선생님들에게 못다 전한 감사했던 마음을 잘 정리하여 전하고 업무도 깔끔하게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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